출구 막힌 '3불 사회' … 패자부활 가능한 사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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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내면은 사회의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한국정책재단(이사장 서석해)이 서울대 이재열 교수에 의뢰해 베이비붐 세대 등을 심층 면접한 결과다. 13일 재단 창립 심포지엄에서 공개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열 교수, 한준 연세대 교수, 정진영 경희대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발만 삐끗하면 추락하는 절벽사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욕마저 잃은 이른바 니트(NEET)족 300만 명….

 한국사회의 위기를 전하는 표현들이다. 건조한 숫자들이 사람들 내면의 위기까지 다 전하지는 못한다. 그 내면을 들여다 보니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가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자)와 에코붐 세대(79∼92년 출생자)를 진단한 결과다. 경제력(안정집단·위기집단)·성별에 따라 5∼8명으로 이뤄진 8개 그룹으로 나눈 후 한 달간 심층면접했다.

 이 교수는 “한국인의 심층을 들여다봤더니 기존 제도와 규칙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다. 특히 부정적 에너지가 커서 놀랐다”고 했다. 사회의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로 사람들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분노의 원인 은 어떤 것이고 해결책은 뭘까. 이 교수는 연세대 사회학과 한준 교수 등과 1년가량 연구한 내용을 13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정책재단(이사장 서석해)의 창립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다. 심포지엄 주제는 ‘한국인, 그 마음의 행로’다. 이 교수 팀에게 연구를 의뢰한 한국정책재단은 지난달 발족한 싱크탱크다. 장기 국가발전 과제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3불(不)사회의 덫=이 교수는 한국사회의 위기 현상을 ‘3불’로 요약했다. 제도나 규범에 대한 불신, 눈높이보다 초라한 현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대책이 없는 데서 오는 불안, 세 가지가 한국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심층면접을 해보니 번듯한 공기업의 소위 잘나가는 젊은 직원이 100억 원을 버는 게 목표라며 일과 시간 이후에 온통 주식투자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에 만족 못하는 불안의 상승 현상이다.

 그는 또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최저임금제·의료보험 등 최소한의 사회 안전장치를 발 빠르게 시행하며 무역 의존도 높은 경제를 끌고 왔는데, 사회적 합의가 아닌 관치에 의존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관치를 고집하기에는 국제경제 상황이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무역의존도가 높은 독일처럼 국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 체제 없이는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저출산, 모험을 회피하는 안전주의의 확산 등으로 지속가능성의 위기,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해결책은 없나=이 교수는 “창조적인 괴짜를 인정하는 관용, 실패해도 모든 것을 잃지 않는 풍토가 시급하다”고 했다. 이 교수 발제에 이어 해법 제시 성격의 소주제 발표자로 나선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직무·성과·숙련급 도입을 통한 임금체계 개선, 대기업 정규직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노동단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정진영(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국가 운영 효율화를 위해 현 대통령제의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제거하거나,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할 만하다”고 했고, 이장우 창조경제연구원장은 “문화나 심리적 영역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사회는 재단 상임이사를 맡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봤다. 그는 “한국인의 내면 변화의 추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심층면접 조사를 매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정책재단=통일·실버·정치·소상공인·사회 등 5개 분야에 걸쳐 실제 채택 가능한 국가정책을 개발한다는 목표로 지난달 발족했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 브루킹스 연구소와 같은 싱크탱크를 지향한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김두우 씨가 상임이사를 맡았고,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박찬욱 서울대 교수, 손연기 전 정보문화진흥원장, 김승남 조은문화재단 이사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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