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배달 나선 종가 맏며느리, 작년에 18억 어치 팔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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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배달 전문업체인 플라워라인의 강은주 대표는 “발로 뛰어 맺은 인연이 가장 큰 사업 재산”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꽃배달 전문업체 플라워라인 강은주(50) 대표의 첫 사업은 결혼 3년차이던 1993년 서울 반포동 도매상가에 차린 꽃집이었다. 무역상인 남편이 대만에서 수입했던 동양란은 도매상들이 앞다퉈 사가면서 들여놓자마자 동이 나곤 했다. 이를 보곤 직접 난을 팔아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엔 난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나 학교 총무과를 무작정 찾아다녔다. 이전까지는 쓰던 물건 한 번 내다 팔아본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꽃 필요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으며 무작정 명함을 돌렸다. 그렇게 발로 뛰어 올린 첫달 매출이 300만원이었다. 틈틈이 꽃꽂이도 배워 꽃바구니와 꽃다발도 팔았다. 매출이 1년 새 10배로 훌쩍 늘었다.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쳤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꽃 주문이 확 줄었다. 가계고 기업이고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꽃부터 소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강 대표의 꽃집 매출도 30% 넘게 떨어졌다. 하지만 이 위기가 그를 꽃집 주인에서 벤처기업 대표로 변신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온라인에서 활로를 찾았다. 검색사이트와 온라인 포털이 이 무렵 활발해졌다. 강 대표는 업계 처음으로 온라인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온라인 사업 시작 3년 만에 월 3000만원이던 매출은 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강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업이 한창 상승 가도를 달리던 2002년 온라인 수주 및 발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루 1000건이 넘는 주문을 하나하나 손으로 받기가 힘들어 만든 전산화 프로그램이었다. 개발비로만 2억원을 들였으니 당시로선 과감한 투자였다. 전국 500여 개 꽃집이 연회비를 내고 이 프로그램을 썼다. 꽃만 팔 때보다 연 매출이 다시 10% 늘었다.

 하지만 온라인 꽃배달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연예인을 모델로 쓴 업체까지 등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퇴사한 직원이 온라인 수·발주 프로그램의 핵심 노하우를 유출하는 일까지 생겼다. 똑같은 프로그램이 업계에 퍼져나갔지만 특허 등록을 하지 않은 탓에 손쓸 방법이 없었다. 연회비를 내고 프로그램을 쓰던 가맹점들은 떨어져 나갔고 매출도 20% 가까이 줄었다. 도무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자 눈을 밖으로 돌렸다.

 “집과 회사밖에 모르다가 그때부터 여성벤처협회 같은 외부활동을 시작했어요. 다른 여성 기업인은 어떻게 살고 사업하는지 궁금했죠. 거기서 만난 분들께 성공 비법뿐 아니라 위기를 이기는 방법을 배웠어요.”

 본격적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것도 이때부터다. 꽃을 케이크나 향수 같은 선물과 함께 팔았고 옥상 조경과 실내외 인테리어도 시작했다. 지난해 맞춤 선물 업체 기프트앤글로벌을 설립한 것도 사업 다각화의 일환이다.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극복의 단초는 결국 하나였다. 바로 발로 뛰는 영업, 그리고 그렇게 확보한 단골 고객이다. “꽃을 팔면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어요. 제가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단골 손님과 단골 거래처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노하우로 선물 분야에서도 승부를 낼 생각입니다.”

 종가 맏며느리인 강 대표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가장 큰 조력자로 두 자녀를 꼽았다. 엄마이기보다 사업가로 산 그를 믿고 응원해줘서다. 그는 “사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할 틈도 없었다”며 “엄마들이 아이 교육이냐, 일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안지현 기자
IBK기업은행·중앙일보 공동기획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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