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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책 구입 0권 … 정원 20명에 입학 1명 그래도 학생 뽑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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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년째 버려진 골프학과 연습장 지난달 28일 제주국제대 캠퍼스 골프연습장엔 그물은 걸려 있지 않고 잡풀만 무성했다. 이 학교에는 골프학과가 있지만 학생들은 외부 연습장을 이용한다. 학교 직원은 “3년 넘게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버려졌다”며 “주로 학생들이 담배 피우는 장소로 쓴다”고 말했다. 제주=김기환 기자

1학기 개강일인 지난 3일 오전 제주시 영평동 제주국제대. 첫 수업이 진행된 강의실에 출석 학생이 세 명뿐이다. 강의를 맡은 교수는 “7명이 수강신청을 했는데 그중 체육특기자가 4명”이라며 “출석 부르기가 민망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올해 이 학과 신입생 정원은 20명이지만 한 명만 등록했다. 그는 “지난해 강의 때는 체육특기자 세 명이 넉 달간 시합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니 출석으로 인정하라는 공문을 학교 본부 측이 보냈더라”며 “이게 제대로 된 학교냐”고 반문했다. 제주국제대는 비리와 부실로 몸살을 앓던 탐라대와 제주산업정보대(전문대)가 통합해 2012년 출범했다.

대구미래대, 학내 분규에 2년 새 총장 3명

 방학 풍경은 더 초라했다. 개강을 사흘 앞둔 지난달 28일, 제주국제대 교정에 들어서서 바라본 건물들은 페인트칠이 심하게 벗겨져 있었다. 강의실동으로 들어서자 복도의 전등이 꺼져 있고 냉기가 감돌았다. 건물 구석엔 쓰레기와 의자 더미가 쌓여 있었다. 도서관 직원은 “방학 내내 도서관에 학생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며 “최근 4년간 학교 예산으로 구입한 책이 한 권도 없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만난 한 교수는 “기자재 살 돈이 없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며 “입학 시즌에 등록금을 받아 밀린 학교 전기세·수도세를 내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교수는 “학생들에게 ‘수능을 다시 보거나 1학년 때부터 편입시험을 서둘러 준비해 다른 대학으로 가라’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이사장 교체기에 내홍을 겪은 이 대학은 특별자치법에 따라 제주도가 관할한다.

 국내 대학은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고학력 인력을 공급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가난 때문에 공부하지 못한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에다 취업이나 결혼에서까지 대학 졸업장이 필수로 여겨지면서 대학생 수가 급증했다. 1980년 27.2%였던 고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2005년 82.1%까지 치솟았다. 대학 설립이 쉬워져(대학 설립 준칙주의) 무더기로 사립대가 생겨난 90년대 후반부터 상승세는 더 가팔라졌다. 한 교육계 인사는 “정권을 잡았던 경북·부산·전남 지역에 신설 대학이 유독 많다”고 꼬집었다.

 국내 대학의 86%를 차지하는 사립대는 부족한 국립대의 공백을 메워왔지만 동시에 대학 부실도 누적됐다. 재단 분규로 10여 년간 임시이사 체제로 있다 2012년 구 재단 측이 복귀한 경북 경산의 대구미래대(전문대)는 최근 2년간 총장이 세 번 바뀌었다.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된 이곳은 올 1·2월 교직원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교수 개인 연구실이 사라졌고 학생 실습 공간도 줄이고 있다. 교수협의회 측은 “도서관도 폐쇄하겠다고 하니 학생들 보기에 부끄럽다”며 교육부 감사와 재단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이 많다 보니 신입생 채우기도 버겁다. 경북의 한 전문대 총장은 “꽃이 일찍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것이란 얘기가 대학 사회에 회자된다”며 “지방대 교수들은 연구나 학생 교육을 제대로 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입학철엔 신입생들이 자퇴할까 봐 관리하느라 바쁘고, 5~6월이면 취업률 높이는 활동을 벌인 뒤 여름철부턴 수시·정시모집에 학생을 끌어들이려 고교를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복대·선린대 등 학생 없자 편법 충원

 신입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편법·불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문대인 경기도 남양주 경복대는 2010~2013학년도에 일반고 졸업생 65명을 ‘특성화고 특별전형’으로 부당하게 합격시켰다가 지난해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됐다. 포항 선린대(전문대)는 자격증 특별전형에서 학과와 관련 없는 자격증 소지자 14명을 합격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 남부대는 입학한 학과의 필수과목을 수강시키지 않고 전과시킬 학과의 수업을 미리 듣게 하는 방법으로 사회복지학과 등 9개 학과에서 신입생 25명을 초과 선발했다가 적발됐다.

 사학 재단 비리가 터져나오고 재학생 충원율이 30%가 안 되는 등 교육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대학이 속출했지만 지금까지 문을 닫은 대학은 11곳뿐이다. 홍승용 전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은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나라는 한국뿐인데 이런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다”며 “부실대학을 감사해 폐쇄 명령을 내리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부실대학을 강제 퇴출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성탁·천인성·윤석만 기자, 남원=장대석 기자, 제주=김기환 기자

알려왔습니다  위 기사에서 ‘경복대 등 학생 없자 편법 충원’이라는 내용과 관련, 경복대 측은 “최근 5년간 신입생 충원율 100%를 기록하고 평균 경쟁률 4.5대 1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별전형 관련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은 담당자의 업무 실수 때문이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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