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기초연금 차등지급 … 중산층 또 손해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25일 정부가 공개한 기초연금 시행 방안은 난수표처럼 돼 있다.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생산 과정도 난산(難産)이었다. 정부가 1000번 넘게 시뮬레이션(모의운용)했다고 한다. 그런 안이지만 반기는 사람보다 회초리를 드는 측이 많다. 정부 안은 내년 7월부터 소득 하위 70% 이하 노인(65세 이상)에게 월 10만~2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소득 하위 63%까지는 20만원, 64~70%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을 줄여 10만~19만원을 지급한다. 이 구간 노인들은 중산층이기 때문에 세법개정안에 이어 기초연금도 중산층을 불리하게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안은 공약 후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2월), 국민행복연금위원회(7월) 논의를 거치면서 축소됐다. 결국 상위 30% 노인 207만 명은 대상에서 제외됐고, 금액도 10만~20만원으로 줄었다.

 이번 안이 난수표처럼 된 것은 국민연금과 연계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10년 가입했으면 20만원 최고액을 받는다. 가입기간이 1년 늘 때마다 기초연금이 약 1만원씩 줄어 20년 이상 가입자는 10만원이 된다. 인수위 안은 가입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이 많아졌으나 이번에는 반대로 갔다. 성실하게 노후를 준비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내년에는 38만 명만 해당하지만 앞으로 국민연금이 성숙하면서 장기가입자, 특히 20년 이상 가입자가 늘게 돼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람이 늘게 된다. 그나마 인수위 안보다 국민연금 연계 범위가 축소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인수위는 모든 대상자에게 국민연금을 연계해 연금 탈퇴가 잇따랐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불안 때문에 연계하지 않으려 했으나 ‘두 제도 통합 운영’ 공약에 맞추기 위해 국민연금과 부분 연계하는 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안 때문에 일부 계층의 노후소득보장도 차질을 빚게 된다. 국민연금은 2007년 개혁을 하면서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을 60%에서 40%로 왕창 줄였다. 대신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의 전신)을 도입했고 이를 서서히 올려 2028년에 10%(20만원)를 감당하게 했다. 자기 소득의 50%를 국민연금·기초노령연금이 커버하게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 안에 따라 20년 가입자가 10만원(소득대체율로 따지면 5%)만 받게 되면 소득대체율에 5%포인트의 구멍이 생기게 된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김상균 명예교수는 “이번에는 기초연금 개혁을 했고 앞으로 국민연금을 고치면서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안의 장점은 돈이 덜 들어간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려면 2030년 74조원이 드는데 정부 안은 49조원만 있으면 된다. 지속가능성이 상당히 커진 것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말이 차등 지급안이지 국민차별이며 국민분열정책 선언”이라면서 “지난 대선부터 국민을 속이기로 마음먹고 대국민 사기극을 기획했던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 안은 현재 노인세대의 빈곤을 완화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면서 지속가능하도록 조정된 것”이라며 “이를 공약파기라고 하는 건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관련기사
▶ 4억4700만원 집에 사는 은퇴부부,소득없어도 기초연금 '0원'
▶ 朴대통령, 오늘 '공약 후퇴' 입장 표명…발언 수위 주목
▶ 새누리 "2030세대 미래 부담 생각한 공약 수정"
▶ 야당 "모든 노인 지급" 요구 … 국회 통과 험난
▶ "국민연금 가입이 죄냐" 朴기초연금안에 청장년 '폭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