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노후대비 세대에 세금 가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소득이 많을수록 늘어나는 세금이 많다. 조세 정의에 부합한다.”

 세제개편안을 내놓으며 기획재정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연간 소득수준에 따라 평균 세금액이 ▶6000만~7000만원은 2만3000원 ▶7000만~8000만원은 33만원 ▶8000만~9000만원은 98만원 ▶9000만~1억원은 113만원 ▶1억~1억1000만원은 123만원 증가한다는 자료도 내놨다.

 하지만 증가액이 아닌 증가율로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한국납세자연합회·하나은행 상속·증여팀(김영림 세무사)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그렇다. 실제론 중산층의 체감 부담이 가장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납세자연합회의 분석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 800만원 등 각종 소득공제를 받아온 근로자의 세제개편 전후 세금 증가율은 최고 ▶7000만원대 18.8% ▶8000만원대 24.4%로 정점을 친 뒤 하향하다가 2억원을 넘어서면 오히려 한 자릿수로 떨어진다. 고액 연봉자들은 소득에서 공제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세제개편의 영향도 덜 받기 때문이다.

이 연합회 홍기용 회장은 “7000만~8000만원대 연봉자의 세금 증가율이 수억원대 연봉자보다 더 커지면서 소득과 세금 증가율이 따로 가는 ‘역진성’이 나타난다”며 “이 구간에 속한 사람들의 반발이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연봉 7000만원 선을 경계로 세금 부담이 급속히 차이 나는 ‘세금 단층’이 생기는 것도 문제다. 연소득 7500만원의 4인 가족(자녀 2, 배우자) 가장이 교육비(300만원), 의료비(100만원), 개인연금(400만원), 보험료(100만원)를 소득공제 받을 경우 현행 소득세제에서 내야 할 세금은 513만2500원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이 사람의 세금은 610만원으로 96만7500원 늘어난다. 반면 소득공제 조건이 같은 6500만원 연봉자는 세제개편으로 오히려 세금이 1만7500원 줄어든다. 정부가 수정안에서 근로소득공제액 한도를 50만원에서 63만원으로 13만원 늘린 영향이 크다.

 열심히 사는 가구가 증세 타깃이 된 것도 조세 철학에 맞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연봉 7500만원이라도 의료비·연금·교육비 지출 없이 보험료 100만원만 공제받는 2인 가구의 세금 증가폭은 30만원에 그친다. 같은 조건에서 9500만원 연봉자의 세금 증가 폭은 30만원, 1억1500만원 연봉자도 33만6000원 정도다. 홍 회장은 “의료비나 교육비·연금 지출이 많은 건 그만큼 국가가 할 역할을 개인이 하고 있다는 얘기”라며 “미국에선 외벌이냐, 맞벌이냐, 독신자냐 등 가정의 상황과 세부담 능력에 따라 세율도 적용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세금 단층’에 직면할 근로자의 숫자도 정부 추산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세제개편안에 따라 연봉 5500만원 이상인 상위 13.2%, 205만 명이 늘어난 세금을 주로 부담한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통계의 시차와 한계가 있다. 정부는 2011년 통계를 썼지만 개편안은 2014년부터 적용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기간 명목임금이 14.8%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2009년 연봉 6000만원 이상 근로자 비중은 8,6%였지만 3년 뒤 2011년에는 10.8%로 커졌다. 국회예산정책처 박용주 경제분석실장은 또 “정부가 활용한 근로소득세 신고자료에는 중도 퇴사자, 신규 입사자 등이 포함돼 있어 5500만원 이상자의 비중이 과소하게 추정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민근 기자

관련기사
▶ 연봉 8000만원 근로자 세금 증가율 가장 높다
▶ "의료비·연금저축은 필수 지출 … 소득공제가 맞아"
▶ 재정 주름살 커진다 … 세외수입도 3조 구멍 날 듯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