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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8000만원 근로자 세금 증가율 가장 높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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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계열 건설사에서 일하는 박용재(42) 차장은 지난해 갑작스러운 마비 증상으로 쓰러져 수술비 등으로 800만원가량 썼다. 그의 연봉은 7500만원. 또래들에 비해 결코 적지는 않다. 하지만 초등학생·중학생 두 자녀와 전업주부인 부인을 부양해야 하는 그에게 연봉의 10%를 넘는 의료비 지출은 큰 부담이다. 게다가 후유증 치료를 위해 앞으로 몇 년간은 상당한 병원비를 써야 할 상황이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연초 의료비 소득공제로 돌려받은 130만원가량의 세금이다. 이후 그는 개인연금도 가입했다. 박 차장은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노후 대비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데다 소득공제의 ‘위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그가 기대했던 만큼 세금을 돌려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의료비·교육비·보험료·개인연금·기부금 등 그간 소득공제가 되던 항목들을 대거 세액공제로 바꾸는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박 차장의 경우 같은 의료비를 쓰더라도 돌려받는 돈은 40만원가량 줄어든다. 이 연봉대 근로자가 대학생 등록비로 900만원을 소득공제 받았다면 올해는 216만원을 돌려받지만 내년 이후에는 135만원으로 줄어든다.

 본지가 한국납세자연합회, 하나은행 상속·증여팀과 함께 정부의 세제개편안 영향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연봉 7000만원을 기점으로 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세금 단층’ 현상이 나타났다. 가장 타격이 큰 층은 연봉 7000만~8000만원대에서 교육비·의료비·연금저축 지출이 많은 사람들이다. 연봉 8000만원에 자녀 대학 등록금(800만원), 보험(100만원), 연금저축(400만원) 등을 소득공제 받았다면 세금 증가율이 24.4%에 달해 전 소득층에서 가장 높다. 연봉 3억원을 받는 최고경영자(CEO)급의 증가율(7.3%)의 세 배 이상이다. 반면 같은 연봉을 받아도 의료비나 교육비·연금 지출이 없으면 세금 증가율이 3.3%에 그친다. 가족 부양과 노후 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이번 개편의 표적이 됐다는 얘기다.

 정부 발표 이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기본 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의료비·교육비 지출이 많아 세 부담 능력 이 떨어진 가구들에 부담을 집중적으로 늘리는 게 조세 원칙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연이어 나온다. 개인연금에 대한 혜택 축소는 중상위 근로자의 노후 준비 의욕을 떨어뜨려 미래 재정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수와 세목을 건드리지 않고 우회적으로 세수를 늘리려는 ‘땜질식 처방’이 초래할 후유증들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의료비·연금 등을 세액공제하는 예는 외국에서도 찾기 어렵다”면서 “의료비와 같이 필요 경비 성격이 강한 경우 소득공제가 적정하다”고 밝혔다. 홍기용(인천대 교수) 한국납세자연합회장은 “정부가 증세 논란 부담에 정공법이 아닌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다 보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선 결국 세율을 손대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지금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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