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이혼 2심 선고 D-1…판사는 28번 '석명' 요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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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3월 12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기일을 마치고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공동취재). 오른쪽은 항소심 변론기일에 출석하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3월 12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기일을 마치고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공동취재). 오른쪽은 항소심 변론기일에 출석하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스1

30일 선고를 앞둔 ‘최태원·노소영’ 이혼 항소심이 진행돼 온 지난 1년 3개월 동안, 재판장인 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59·연수원19기)의 심증(心證)에 법조계 관심은 내내 쏠렸다. 김 부장판사는 과거 재판 시작부터 ‘판결문 초안’을 미리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재판을 진행한 일로 법원 내부 논쟁을 불렀던 인물이다.

김 부장판사를 필두로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 김옥곤 이동현)는 지난해 2월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을 맡아왔다. 이번 사건에서 김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집필하는 ‘주심’은 아니다. 그럼에도 법조계 주목을 받는 것은 그만큼 “재판부를 집권적으로 이끄는 재판장 스타일”(재경 법원 판사)로 법원 내부 정평이 났기 때문이다.

김 부장판사가 30일 내릴 결론에서 최대 관전 포인트는 노 관장이 받게 될 재산분할액과 위자료 규모가 1심과 어떻게 달라질지다. 1심은 노 관장에 대한 재산분할은 부동산·예금 등 현금 665억원, 위자료는 1억원만 인정했다. 그러자 노 관장은 2심에서 재산분할 액수를 사실상 1조원대에서 2조원으로 높여 청구했다.

법원 안팎에선 “적어도 1심보다는 더 큰 액수가 인정될 것”이란 견해가 상당하다. 이런 분석은 김 부장판사가 그동안 이혼 사건에서 보여 온 여성주의적 경향성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전경. 뉴스1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전경. 뉴스1

대표적인 게 그가 지난해 1월 선고한 또 다른 이혼 소송 판결이다. 김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부부의 재산을 50% 대 50%로 분할하라고 판결한 1심을 깨고, 불륜을 저지른 남편의 몫을 5%포인트(p) 낮추고 대신 아내의 몫을 그만큼 늘려 55%로 인정했다. “2년 동안 부정행위 상대방에게 수천만원을 송금하거나 함께 소비한 사정을 분할대상 재산의 범위나 분할 비율 등에 반영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상간녀에게 지출할 금전으로 부부 공동의 재산이 감소한 점을 고려해 부정행위자의 ‘재산 형성 기여도’ 자체를 하향 조정한 셈이다.

눈길을 끈 점은 김 부장판사가 해당 선고 5개월 뒤 이 판결의 의미를 추가로 분석한 소논문 형식의 글을 법원 내부 ‘가사소년커뮤니티’ 온라인 게시판에 직접 올린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부정행위에서 비롯된 재산 감소나 부정행위 상대방의 재산 증가 등의 사정을 재산분할의 대상 재산의 범위, 분할비율 등의 산정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항소심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가운데 올라온 이 주장을 두고 법원 내부에선 “사실상 최태원·노소영 항소심 선고의 예고편 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실제 김 부장판사는 이번 2심에서 양측을 대상으로 가족이 아닌 ‘제3자’에게 지출한 금전 내역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법조계 내부에선 “최 회장의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에게 지출한 금전 내역이 있다면 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 아니겠나”(중견 변호사)란 평가가 나왔다.

이런 석명을 요구받자 노 관장 측은 지난해 11월 “2015년 최 회장이 김 이사장과의 관계를 밝힌 이후부터만 보더라도 최 회장이 김 이사장에게 쓴 돈이 1000억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 측은 “악의적 허위 주장이고 지출한 것은 6억 1000만원에 불과하다”라고 반박했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이외에도 김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지난해 6월 또 다른 이혼 사건에서 ‘2억원 위자료’ 판결로 법원 내부에 파격을 안겼다. 현재 이혼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중 위자료 액수가 5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드문데도, 김 부장판사는 1심에서 3000만원만 인정된 위자료를 2심에서 2억원으로 올려 선고했다. 해당 사건은 유책배우자가 제기한 이혼소송이 1심에서 예외적으로 인용됐던 사건이다. 유책배우자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그러자 김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혼인관계 파탄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데다 이혼을 원치 않았던 상대방에겐 더 높은 기준으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위자료를 대폭 상향했다.

최 회장도 유책배우자이나 먼저 2018년 2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당초 노 관장은 이혼에 반대하다가 1년 10개월 만에 반대입장을 접고 반소(맞소송)를 제기했다.

노 관장에게 1심보다 관대한 판결이 나올 것이란 일각의 전망을 더 하는 것은 김 부장판사가 “선제적 직관을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어 한참전에 판결문도 미리 써놓았을 것”(지방법원 부장판사)이란 법원 내부 평가 때문이다. 그는 2015∼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7부 재판장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 공작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을 진행하면서 당시 소속 재판연구관(판사 업무를 보조하는 로클럭)에게 재판 시작 단계에서부터 무죄 취지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도록 한 적이 있다. 법정에서 검사가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면 이를 깨는 내용을 덧댄 새로운 무죄 초안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최태원, 노소영 부부의 결혼 기사가 실린 1988년9월13일자 중앙일보 지면. 한 면에 두 개 기사로 나뉘어 실려 있다. 중앙포토

최태원, 노소영 부부의 결혼 기사가 실린 1988년9월13일자 중앙일보 지면. 한 면에 두 개 기사로 나뉘어 실려 있다. 중앙포토

다만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전혀 예측 불가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고법 판사 출신 변호사는 “김 부장판사는 논리적 허점을 하나도 남기지 않기 위해 쟁점을 총망라해 살피고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스타일”이라며 “어떤 결론을 내릴지 가늠이 어려운 인물이라 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물론 1심보다는 재산분할액이 좀더 늘어날 수는 있지만, SK 그룹에 영향을 미치는 식의 무리한 판결을 내리진 않지 않겠나”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이번 2심에서 양측에 총 28차례 석명(법원이 사건 진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당사자에게 추가 설명 기회를 주고 입증을 촉구하는 행위)을 요구했다. 석명요구가 단 두 차례에 불과했던 1심보다 광활하게 쟁점을 들여다 본 셈이다. 이 사안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이보다 더 많은 재판장의 석명 요구는 본 적이 없다”며 “그만큼  이 사건에 대단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오는 8월 퇴임하는 민유숙·김선수·이동원 대법관의 뒤를 이을 55인의 후보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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