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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테러는 잊어라 ! 21세기 아랍경제 리포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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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랍 파워
비제이 마하잔 지음
이순주 옮김, 에이지21
436쪽, 1만6000원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처럼 나라마다 사회상을 반영하는 생활 표현이 있다. 한때 외국인들은 중남미 지역에서 ‘마냐나(내일)’, 이슬람권에서는 ‘인샬라(알라의 뜻대로 하옵소서)’를 배워야 현지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예컨대 아랍 세계 곳곳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은 ‘얄라(yalla·갑시다·Let’s go)’다. 비제이 마하잔 텍사스대(오스틴)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지은 이 책(부제 3억 5천만 소비자를 사로잡는 8가지 비즈니스 전략)에 따르면 단 며칠만 아랍 국가에 체류해도 ‘얄라’라는 말 한마디는 배우고 떠나게 된다.

 저자에게 1차적인 타깃 독자는 미국 기업인이다. 실상과 동떨어진 편견만 덜어내면 아랍연맹이라는 거대 수출시장이 보인다는 것이다. 각종 수치가 뒷받침한다. 아랍 국가들을 한데 묶어보면 2011년 기준으로 GDP가 2조30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8대 경제권이다. 인구 3억 5000만에 일인당 GDP는 6700 달러다. 중국·인도보다 구매력이 높다. 인구의 반 이상이 25세 미만인 젊은 시장이다. 중산층은 1억 5000만 명 이상이며 7900만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 최대 관광시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랍세계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흔히 아랍 여성 하면 베일을 쓴 미지의 존재를 떠올리지만 오늘의 아랍 여성은 교수·행정가·기업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앙포토]

 아랍 세계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 즉 구세계(舊世界)의 중심이다. 마하잔 교수가 지적하듯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타면 8시간 내로, 상하이·런던·남아공에 닿을 수 있다. 지리적 연결성이 아주 좋은 지역이다.

 뉴스에 나오는 아랍 지역은 테러·폭력·혼란·독재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저자도 그런 막연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했다. 그는 CNN도 알자지라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아랍 세계를 찾아 떠났다. 3년 동안 22개 아랍연맹 회원국 중 18개 국가를 방문했다. 현지에 진출한 회사에서 시장에 장보러 나온 소비자들까지 600건의 인터뷰를 했다.

 마하잔 교수가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훨씬 아랍 지역이 세계의 나머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도 서구화·세계화가 삶의 방식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 소비자나 아랍 소비자나 눈은 엇비슷하다. 외국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도 매우 높다. 아무리 정부들이 이스라엘과 관련 있는 회사 제품의 수입을 금지시켜도 소용없다. 시장에 가면 다 살 수 있다.

 변화의 중심은 여성과 젊은이들이다. 사우디 여성들의 수중에는 140억 달러가 있다. 아라비아만 연안 8개국에서는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능가한다. 아랍 젊은이들은 식민시대 기억이 없어 서구에 대한 반감도 덜하다. 그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든 노트북이든 세계의 다른 젊은이들과 같다. 그들이 꾸는 꿈도 그들의 고민도 수렴하고 있다.

 중대한 차이점은 종교문화가 소비 행태에 상대적으로 더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제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인 덴마크의 아를라는 40여 년 동안 아랍시장에 공을 들였다. 한 덴마크 신문이 2005년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하하는 만평을 싣는 바람에 공든탑이 무너질 뻔 했다. 종교 지도자들이 아를라 제품 보이콧을 호소했다. 아를라가 매출을 회복한 것은 2010년이 돼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메카 성지순례 기간을 지칭하는 핫즈(Hajj·이슬람력 12월 8~10일)는 13번째 달과 같다. 소니의 경우 연매출의 40%가 핫즈 기간에 달성된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생활습관이 비슷해지다 보니 비만, 성인병도 증가하는 등 나쁜 점까지 닮아간다. 그러나 크고 작은 관습의 차이가 남아 있다. 마하잔 교수는 생활가정용품을 생산하는 유니레버 중역을 인터뷰했는데, 그 중역이 가늠하는 바에 따르면 이 지역 사람들이 매일 두 번씩 양치질을 하게 된다면 역내 치약 시장규모가 8배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아랍 파워』는 아랍 경제 입문서이지만 정치·역사·문화가 시장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려준다. 숫자나 팩트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포만감을 느낄 것이다. 일화(逸話)도 풍성하다. 현장 전문가·학자·일반인 모두에게 유용한 내용이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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