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과 지식] 열정의 땅 스페인, 고난의 땅 스페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스페인 문화 순례
김창민 엮음
서울대출판문화원
504쪽, 3만5000원

햇살. 스페인 여행서마다 찬양하는 스페인 대표 자원이다. 투우로 상징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열정,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인상적으로 꼽기도 한다. 막상 가보면, 사람 사는 데 어디나 그렇듯, 스페인도 마냥 피에스타(fiesta·축제)만은 아니다. 불 같은 열정을 기대하고 찾아갔다 스페인 북부 사람들의 차분함에 당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스페인 이미지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에서 기획한 이 책 따르면 이런 고정관념의 뿌리는 역사가 깊다. 기본적으로 유럽 대륙 끝자락에 자리잡은 지형적 위치의 영향이 크다.

 이베리아 반도는 ‘세계의 끝’(finisterre) ‘극지점’으로 묘사되면서 수백 년간 유럽인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19세기 유럽엔 또 한차례 ‘스페인 열병’이 유행했다. 리스트·비제·쇼팽·라벨 등 당대의 음악가들은 이베리아의 열정을 테마로 한 작품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작가들도 강렬한 태양이나 격정을 토해내는 플라멩코의 선율을 예찬했다.

 이들에게 이베리아 반도는 이질적인 문화가 섞여 있어 매혹적인, 억눌린 인간의 본성이 풀려나는 마법의 대지였던 것이다. 막상 당시 스페인은 식민지를 차례로 잃은 후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치·사회적 혼란이 고조되던 때였는데도 말이다.

 ‘세비야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우리가 스페인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의 기원, 그 내력과 뒷모습을 살펴본다. 스페인은 땅끝인 동시에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교차되는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설명이다. 한때 세계를 호령한 해양제국의 추억을 갖고 있지만 상처가 깊었던 내전(1936~1939)과 36년간의 프랑코 독재 시절을 거쳐 어렵게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이기도 하다.

 책은 14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김창민 서울대 서문과 교수 등 스페인 문화·문학 전공자 12명이 스페인은 다양한 얼굴을 짚었다. 스페인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혼종성을 소개하고(최해성), 서구 최초의 근대소설로 거론되는 『돈키호테』 등장까지 스페인 문학의 흐름을 요약한다.(김춘진) 축구 관람과 복권 구매 행위를 중심으로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한 대목(황수현)도 흥미롭다.

 다만 각 장의 연결 고리가 약해 읽는 맛은 떨어진다. 완독까지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순례길을 걷는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햇살과 축제만을 담은 안내서에선 미처 보지 못한 스페인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전영선 기자

관련기사
▶ [책과 지식] 냉면·막걸리·소주…우리가 살아온 지난 100년
▶ 세운상가, 인사동, 홍대 앞…『서울, 공간의…』
▶ "분노는 정의를…"『고대 희랍·로마의 분노론』
▶ "실패가 곧 패배는 아니다"…『아크라 문서』
▶ [주목! 이 책] 스티븐 호킹 外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