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과 지식] 세운상가, 인사동, 홍대 앞 … 추억이 있어 정겨운 서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조한 지음, 돌베개
360쪽, 1만6000원

책을 읽기 전, 잠시 떠올려 보면 좋겠다. 이 도시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어딘지, 앞으로도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면 하는 골목은. 왜 그 곳을 마음에 담게 됐을까. 기억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공간에 함께했던 이와 나눴던 대화, 음악, 하늘 색깔, 유난히 상쾌했던 바람, 그런 것들.

 그리고 이제 저자와 함께 여행을 떠날 차례다. 안내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서 놀고 공부한 홍익대 건축학과 조한 교수다. 대학 시절 추억이 생생한 홍대 앞 서교 365에서 출발한다. 40여 년에 걸쳐 조금씩 흔적을 잃어간 홍대 앞 벽돌거리에서 다양한 시간이 공존하는 신사동 가로수길, 역사적인 로맨스가 피어난 정동길까지, 서울 구석구석 저자가 아끼는 공간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서촌의 옥류동천길을 걸으며 193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국 주거학의 계보를 읽어내고, 인사동에서는 얽히고설킨 골목 하나하나의 매력을 세심하게 살피기도 한다.

 이 모든 장소들이 소중한 것은 ‘이 곳에 쌓인 시간’ 때문이다.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강남고속버스터미널처럼 이제는 낡고 누추해 보이는 장소에도 그 공간을 살아낸 이들의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쉬고 있다. 때로 그 흔적들은 마주하기에 불편하기도 하다. 한때 왕조의 위엄을 상징했던 환구단은 후손들의 무관심 속에 호텔의 뒷마당으로 떨려나야 했다.

 서울시 신청사가 지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건축계의 복잡다단한 문제점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광화문광장에 대해서는 아예 상상 속의 도면을 그려보기도 한다. “광화문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이고 세종대왕 동상은 휑한 세종문화회관 계단 위로 옮기는”, 꽤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다.

 결국 저자가 하고픈 이야기는 이거다. 건축물의 가치는 조형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곳에 남겨진 각별한 시간의 자취에서 나온다. 그러니 낡고 버려진 공간이라고 무작정 없앨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보존하며 되살려야 한다. ‘선유도 공원’ ‘윤동주 기념관’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등은 그 좋은 예다. 책을 덮고 나면 흔히 보던 서울 풍경이 사뭇 달라 보이게 된다. 그리고 번잡한 ‘모두의 서울’ 안에서 누추하지만 위안이 되는 ‘나만의 공간’을 찾아내기가 조금 더 수월해질지도.

이영희 기자

관련기사
▶ [책과 지식] 냉면·막걸리·소주…우리가 살아온 지난 100년
▶ 테러는 잊어라 ! 21세기 아랍경제…『아랍 파워』
▶ 열정의 땅 스페인, 고난의…『스페인 문화 순례』
▶ 세운상가, 인사동, 홍대 앞…『서울, 공간의…』
▶ 관광이란 이름의 불편한 진실…『여행을 팝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