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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행복보다 돈 … 관광이란 이름의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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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행을 팝니다
엘리자베스 베커 지음
유영훈 옮김, 명랑한 지성
527쪽, 2만5000원

최근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고 있는 지인에게 “○○약국에 가서 오일을 사라”고 권했다. 프랑스 약국에서 파는 화장품·오일이 여행자의 구매 목록에 오른 지 오래다. 적은 돈으로 현지인의 취향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돌아온 그의 메시지에 실소가 터졌다.

 “프랑스인 점원이 한국인이 다 사가는 오일이 있다고 권하더라. 유창한 한국말로.”

 영어로 물으면 프랑스어로 답한다고 할 만큼 콧대 높은 프랑스인조차 여행자의 지갑 앞에선 속수무책인 모양이다. 그만큼 관광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여행자들의 소비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각종 서비스가 넘치고 오가는 돈의 규모는 커지고 있다.

 이 책은 관광산업의 역사를 짚고, 이 산업이 우리의 오늘과 미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진단한다. 워싱턴 포스트 종군 기자,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답게 저자의 시선은 날카롭다. 관광업계의 협찬을 받아 공짜여행을 하며 칭찬 일변의 리뷰를 쓰는 언론의 관행도 지적한다.

 그가 겨울에 떠난 카리브해 유람선 여행은 안락한 객실에서의 휴식과 쇼핑·오락·만찬으로 즐겁게 시작해, 인도인 웨이트리스의 저임금 문제(월급 50달러)를 지적한다. 미국인이 운영하는 유람선사의 국적이 바하마·파나마인 배경에는 최저임금·근로기준·환경규제 등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다. 그가 만난 알래스카의 환경운동가는 “유람선에서 나온 오염물은 처리되지 않은 인간의 분뇨였고, 유람선은 떠다니는 화장실”이라고 말했다.

어떤 산업이든 규모가 커지면 그늘이 생기는 법. 저자가 본 여행의 ‘민낯’은 낭만적이지 않다.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는 주저앉고 있다. 인근에 무작위로 지어진 리조트가 지하수를 퍼 올려 사원의 지반이 꺼지고 있어서다. 관광객이 가져다 주는 돈맛을 알아버린 정부는 이를 방관한다. 섹스 관광의 피해자는 가족들이 돈 때문에 팔아버린 어린 아이들이다. “캄보디아를 찾는 남성 관광객의 21.7%가 섹스를 원하고, 성 구매자의 국적으로 한국·일본·중국·태국·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남자들이 주류를 차지한다”는 구절에선 얼굴이 화끈거린다.

 저자가 문제점을 찾다가 포기한 도시도 있다. 프랑스 보르도다. 알랭 쥐페 시장이 취임하면서 이 도시는 구닥다리 와인 촌락에서 2008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황금빛 도시로 탈바꿈한다. 건물 앞면에 찌들어 붙었던 때를 청소하고, 버려진 하천과 보행로를 재정비했다. 저자는 보르도 관광청장을 만나 비결을 묻는다. 그의 간결한 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쥐페의 계획은 도시를 소생시키는 게 목적이었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었어요. 그랬기에 성공했죠. 좋은 관광의 열쇠는 주민을 위한 계획에 있습니다. 주민이 행복하면 방문객도 행복해집니다.” 매년 10억 명이 여행을 떠나는 관광산업의 시대, 여행자이자 현지인인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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