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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냉면·막걸리·소주 … 우리가 살아온 지난 1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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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 572쪽
2만9000원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지난 100년간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왔을까. 사학자 주영하 박사의 신간으로 돌아본 한국인의 밥상. 한 세기의 격변이 담겼다.

최근의 요리 열풍은 요리가 단순히 먹고 즐기는 데서 벗어나 담론의 무대로 나왔다는 한 증거다. 그 담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의 신작은 한 상 잘 차려낸 뷔페 같다. 부제가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인 것도 그런 뉘앙스다. 설렁탕, 육개장, 냉면과 만두, 비빔밥, 명란에 어묵과 빵은 물론 막걸리와 희석식 소주,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치맥’의 원류인 튀긴 통닭과 생맥주의 유행까지 두루 짚는다. 나처럼 1970, 80년대를 살아온 사람에겐 이 책이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옛 문헌에 파묻혀 있던 자료를 꼼꼼하게 찾아냈고, 그것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내 ‘주영하식’으로 다시 엮었다. 그리하여 왜곡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음식사의 빈 페이지를 메워냈다. 맨손으로 세공한 메뉴별 연대기랄까. 음식 역사의 바다에서 수공업적으로 낚아 올린 메뉴들을 뱃전에 싱싱하게 부려놓았다. 그저 우리는 ‘소독저’(과거 ‘선술집’에서 쓰였던 나무젓가락)를 벌려 집기만 하면 된다.

 서문에서 밝혔듯 저자는 한국 음식의 역사를 정리하며 어떻게 시대를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메뉴를 선정하고 그 안에서 종으로 역사성을 촘촘하게 수습하고, 횡으로는 그 음식이 변화하게 된 여러 영향을 보강하는 방법을 택했다. 20세기는 우리 민족에게 최고의 격변기였고, 당연히 음식문화에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가 불어 닥친 시기였다. 이를 테면, 한반도에서는 농사가 잘 안돼 귀했던 밀가루가 오히려 얼마 후엔 정권의 소비 촉진 장려를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① 1893년경 프랑스에서 유통되던 사진 엽서. 사진 아래 `COREE. Bon appeetit!(한국, 많이 드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② 1920년대 인천의 중화루. 입구에는 영어로 된 간판을 걸고 2층에는 한자로 쓴 간판을 걸었다. ③ 1895년 고종에게 하사받은 가옥에 인테리어를 서양식으로 바꾼 손탁 호텔 내부와 손탁. ④ 형제추탕의 1935년 5월 5일 상공연합대운동회 기념사진. ⑤ 1903년 9월 17일에 개업한 명월관. [휴머니스트]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들 한다. 저자는 ‘밥’의 위상 변화에 특히 주목한다. 70년대까지 밥상의 ‘갑’이던 밥은 80년대에 이르러 일품요리와 매운 반찬에 그 자리를 내준다. 밥보다 반찬을 많이 먹게 된 것은 우리 식생활이 미국식 현대영양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식이 직면했던 어색한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흔히 우리 밥상은 오래 전 선조의 그것과 유사할 것이라는 기대(?)하는데, 이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 저자는 120여 년 전의 사진 한 장을 제시하는데, 밥상에 밥그릇이 엄청나게 크다. 그는 실제로 그 밥그릇의 용적이 900㏄에 이른다고 계산한다. 요즘 쓰는 것은 270㏄ 정도다. 물론 국그릇도 아주 크다. 이런 우리의 탕반(湯飯)문화는 외식의 주요 아이템으로 연결된다. 식민지 시대 외식의 총아였던 설렁탕의 역사를 추적한다.

 “그대로 척 들어서 ‘밥 한 그릇 쥬’하고 목로걸상에 걸터앉으면 일분이 못되어 기름기가 둥둥 뜬 큰 특백이(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시가 앞에 놓여진다….”

 저자가 당시 문헌에서 찾아낸 설렁탕 시식기다. 설렁탕이 서울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은 형평사(일제 때 천민해방운동 결사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김두한의 증언을 통해 복원한 내용도 뒤따른다. 설렁탕이 우리의 음식이지만 격동의 세기에 자연스럽게 외국의 영향을 받게 됐다는 것을 고증으로 밝힌 부분도 흥미롭다. 설렁탕에 넣는 생파가 당시 한국에 온 산둥(山東) 출신의 화교들의 식습관에서 착안한 것이라는 대목이다.

 대구의 대표 음식인 육개장이 본디 개장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개고기 대신 쇠고기로 끓인 개장국이라는 뜻이다. 개고기는 우리가 오랫동안 먹어온 민족 음식이다. 특히 19세기 중반 조선을 찾은 프랑스 선교사 클로드 달레가 “선교사들은 그 맛이 조금도 나쁘지 않다고 일치하여 말한다”고 한 대목에선 브리지드 바르트의 개고기 발언이 묘하게 연상되기도 한다.

 저자는 개장국이 본래의 이름을 잃고 보신탕으로 불리게 된 연유도 밝히고 있다. 일본이 개고기를 싫어해서 식민지 시절부터 반씩 혼용해 쓰다가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이승만 정권부터 보신탕이라는 말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장국이라는 고유한 이름은 이제 육개장에서 겨우 흔적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비빔밥에 당연히 넣는 것으로 알고 있는 고추장이 불과 197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게다가 최초의 상업적 비빔밥은 오색나물 대신 육회가 ‘메인’ 고명이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미식가들의 끊임없는 관심의 대상인 냉면의 역사도 저자의 손길에서 뽑혀 나온다. 제빙기가 도입된 후에도 여전히 겨울 한강에서 잘라낸 얼음이 쓰인 사실도 있고, 특히 식민지 시절 일본산 조미료 아지노모도의 때맞춘 등장은 동치미 없는 여름철에도 맛있는 육수를 제공한 해결사 역을 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역사를 다룬 책이지만, 우리 음식의 생생한 맛이 느껴져 쉽게 읽힌다. 술자리에서 안주 삼기 좋은 얘기들도 많다. 희석식 소주가 ‘燒酒’가 아닌 ‘燒酎’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 안줏값을 따로 받지 않았던 서울의 선술집, 요리옥의 기생과 ‘뽀이’, 사시미에 밀려 종적을 감춘 한국식 회의 행방 같은. 무엇보다 그가 마이크로필름에 눈을 버려가며 찾았을 이런 신문 기사가 압권이다.

 “꽁꽁 언 김칫독을 뚫고 살얼음이 뜬…우루루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면옥집의 대표 메뉴, 냉면과 만두 편)

 일찍이 서양의 여러 철학자들은 ‘내가 먹은 것이 나’라는 통찰을 보여준 바 있다. 현대에는 이것을 영양학적 해석에 그치지 않고 음식 안에 깃든 역사성 이해로 확장한다. 결국 내가 먹는 음식은 역사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지금도 역동하는 역사이자 문화라는 것이다. 먹는다는 행위에 영양과 쾌락을 넘는 무엇이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효용은 중언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
어느 날 국수를 만들고 싶어 이탈리아로 건너가 요리사가 됐다. 현재는 이태원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면장’(麵丈)으로 일한다. 먹는
일의 숭고와 혐오 사이에 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등 몇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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