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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베스트셀러 작가 코엘료 "실패가 곧 패배는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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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문학동네
196쪽, 1만1500원

고전이 읽히는 것은 삶의 본질에 대한 성실한 천착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에도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랑하고 죽는 우리들의 궤적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보면 천 년 전의 삶이나 천 년이 지난 뒤의 삶은 크게 다를 바 없다.

 파울로 코엘료(66)의 신작 소설은 그런 인생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1099년 7월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위해 무장한 십자군이 턱밑까지 다가오자 도시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내일 당장 적군의 칼과 창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광장에 모인 예루살렘 시민을 향해 콥트인 현자(賢者)는 설교 대신 이렇게 말한다.

 “지금부터 질문을 하면서 저기 밖의 적군들과 그대들 내면의 두려움은 잊으라. 우리는 매일의 삶에 대해, 그 안에서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후손들은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천 년 후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

 적을 무찌를 전략을 짜도 시원찮을 판국에 현자와의 질의응답은 패배·불안·고독·사랑·일·성공 등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자리가 된다.

 현자는 말한다.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싸움에서 이겨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음을, 그렇기에 “패배자는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또 현자는 답한다. “사랑은 믿음을 보여주는 행위이지 교환 행위가 아니다”라고. 그리고 설명한다. “인간의 탄생과 함께 불안도 태어난다. 불안을 완전히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현자는 강조한다. “가장 파괴력 강한 무기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며 “적은 손에 칼을 든 채 그대들과 맞선 사람이 아니라 등 뒤에 칼을 숨기고 그대들 곁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예루살렘 광장의 고민은 오늘날 SNS에 넘쳐나는 고민과 놀랄 만큼 닮았다. 그렇기에 천 년 전 현자와의 대화를 묶은 아크라 문서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삶의 지침서다. 삶과 죽음에 관한 절대 진리가 아닌 일상의 난관을 직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식을 전해주는.

 그래서일까. 소설의 본격적인 앞머리에 실린 현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내가 이제 삶의 끝에 이르렀으니, 지상을 거니는 동안 배운 모든 지식을 후세를 위해 남기노라. 그들이 부디 이 지식을 잘 활용하기를.”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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