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체 작년 2시간 줄 … 요즘엔 휴일도 대기자 없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18일 오후 6시 서울 마포의 한 대형마트 푸드코트에는 손님이 앉은 자리보다 빈자리가 더 많다. [강정현 기자]

18일 오후 2시 대기업이 운영하는 A패밀리레스토랑의 서울 영등포구 한 매장. 휴일인데도 화이트보드 위 대기자 리스트는 텅 비어 있다. 이따금 손님들이 들어서면 종업원들이 달려가 곧장 빈자리로 안내했다. 매장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주말이면 2시간씩 줄을 서야 해 발길을 돌리던 모습이 흔했지만 올 들어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패밀리레스토랑은 2008년 외환위기 때도 성장세를 기록하며 한때 매출 성장률이 20%를 웃돌았지만 올 들어 점점 낮아지다가 지난달에는 7%에 그쳤다.

 16일 오후 2시 서울역 한 대형 아웃렛. 매장마다 ‘40~60% 할인’이라는 붉은색 안내판이 나붙어 있었다. 아웃렛 내부를 오가는 손님 수에 비해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거나 흥정하는 고객은 많지 않았다. 아동복 매장을 둘러보던 이학자(62·여)씨는 “매년 생일선물을 겸해 손주에게 여름 옷을 선물했는데 올해는 부담스러워 좀 더 저렴한 학용품으로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이 아웃렛은 올 1월 개점 후 석 달간 매출액이 월 120억~130억원을 오르내렸으나 6월 100억원, 7월 86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중산층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 내수 업종 가운데 외식업체가 맨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외식비는 중산층이 허리띠를 졸라맬 때 가장 먼저 줄이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B패밀리레스토랑은 올 들어 저가 신메뉴를 대거 출시하고, 메뉴판·식기·인테리어에 직원 유니폼까지 교체할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지만 매출 신장세가 지난해에 비해 꺾였다. 외식비를 줄이면서 역설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곳도 있다. 한 마리 값에 두 마리를 주는 ‘호식이두마리치킨’의 경우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10% 이상 늘었다. 2011년에 비하면 42%나 늘어났다. 소비자들이 실속형 소비를 택한 결과다.

 과자 제조업체인 C사는 신제품 개발을 완료하고도 출시를 미루고 있다. C사 관계자는 “과자는 출시 초기에 인기몰이를 해 브랜드 인지도를 올려야 나중에 스테디셀러가 되기 때문에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신상품을 출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소비심리 회복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매년 두 자릿수 정도의 신제품을 출시하던 또 다른 국내 대표 식품업체 역시 올해 신제품 출시는 라면 한 종이 전부였다.

 중산층이 주로 찾던 면세점 매출도 지지부진하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올 들어 내국인 고객 매출 신장률이 0%를 기록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2010년 내국인과 외국인의 매출 비중이 5대 5였지만, 올 상반기에는 4대 6 정도로 외국인 매출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줄이지 않는다’는 학원비 지출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이 각 카드사로부터 취합해 공표하는 ‘소비 유형별 개인신용카드 결제액’ 통계에 따르면 올 5월 학원비 지출액은 784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 감소했다. 올 들어 1월을 제외하고는 전년 동기 대비 학원비 지출은 4개월 연속 감소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들이 돈을 쓰려면 앞으로의 경기 상황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것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 들어 세무조사에 이어 증세 논란까지 벌어지면서 실제로 돈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이상이 더 지갑을 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금 한국은 경제의 세 주체인 가계·기업·정부 중에서 가계 부문이 무너져버린 비정상적인 상태”라며 “중산층이 안심하고 지갑을 열 수 있게 하려면 단기적 경기 부양책보다 집값·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고 노후 걱정을 없애주는 쪽으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소비 회복 플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지영·박태희·구희령·김영민 기자, 신혜진 인턴기자(고려대 영문과)

관련기사
▶ 텅 빈 명품관 "보름간 200만원대 핸드백 1개 팔았다"
▶ 부자도 중산층도 지갑 열지않는 '소비 빙하기'…방치하면
▶ 日, 소비 살리려고 상품권·현금 뿌렸지만 실패
▶ 명품 중고 매장 가보니, 팔려는 사람도 늘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