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전 전우에게 "꼭 돌아올게" 그 약속 지키려 북한 간 미 노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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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예비역 해군 대위 토머스 허드너(왼쪽). 오른쪽은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격추돼 돌아오지 못한 미 해군 최초의 흑인 비행사 제시 브라운. [AP=뉴시스]

동방의 먼 나라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두 청년은 아마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미국인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이 속한 세계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한 청년의 이름은 토머스 허드너. 뉴잉글랜드 출신의 백인으로,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입학 허가를 받은 대형 식료품점 사장 아들이었다. 또 다른 청년의 이름은 제시 브라운으로, 미시시피에서 농사 짓던 소작인의 아들이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군 내 인종차별 철폐 정책 덕에 미 해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라는 영광을 안았다.

 이들 두 사람은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형제보다 진한 우애를 나눴다. 하지만 두 청년을 비극적으로 갈라놓은 것 역시 한국전이었다. 1950년 12월 4일 두 사람이 속한 32전투비행중대는 장진호 인근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미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출격했다. 브라운의 F4U 콜세어가 허드너가 속한 비행기 6대의 편대를 이끌었다.

 브라운의 전투기가 지상에서 날아온 대공포에 격추된 것은 늦은 오후였다. 추락한 전투기에서 브라운이 손을 흔들며 구조 요청을 하는 걸 목격한 허드너는 즉각 자신이 몰던 전투기의 방향을 틀었고,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전투기를 불시착시켰다. 정신없이 브라운에게 뛰어갔을 때 전투기에서는 이미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허드너는 맨손으로 닥치는 대로 근처에 있던 눈을 집어 불길을 잡으려 애썼다. 손에 불이 붙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겨우 조종석으로 다가갔을 때 브라운의 다리는 동체에 눌려 부러지고 피가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허드너의 구조 요청에 이내 도착한 해병대 헬기 파일럿도 함께 브라운을 끌어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의식이 혼미해지기 시작한 브라운은 허드너를 붙들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내가 살아남지 못하면 내 아내 데이지에게 꼭 말해줘.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고.”

 적의 총소리가 가까워지고 검은 연기가 몰려왔다. 헬기 파일럿은 “지금이 아니면 헬기를 띄울 수 없다”며 허드너를 끌어냈다. 억지로 브라운의 곁을 떠나며 허드너는 거듭 말했다. “내가 꼭 돌아올게. 반드시 널 위해 돌아올게.” 이튿날 미군은 전투기 두 대가 추락한 곳에 네이팜탄을 떨어뜨렸다. 적군이 브라운의 유해나 전투기 잔해를 손에 넣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17일 동안 계속된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 1만5000명 가운데 6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62년7개월이 흐른 20일(현지시간) 허드너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북한을 찾았다. 1주일 동안 머물며 전투기 추락 지점에서 브라운의 유해를 찾아 미망인인 데이지(86)와 딸 팸 나이트의 품에 안겨주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다. 다음 달이면 89세가 되는 허드너는 브라운을 구조하려 한 공로로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고, 73년 해군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뒤에는 퇴역군인 지원단체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브라운과의 약속을 지키기 전까지는 임무가 끝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린 브라운을 항상 선임으로 깍듯하게 대했던 그는 “브라운은 비행에 대한 열정과 팀원에 대한 배려를 갖춘 진정한 리더였다”며 “우리 중대 모두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방북을 제의한 이는 전쟁 영웅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는 작가 애덤 마코스였다. 허드너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북한 군부와 오랜 기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계 미국 여성 김채연씨가 나서면서 일이 성사됐다. 김씨는 미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을 주선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AP통신은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27일을 맞아 대대적인 군 퍼레이드 등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이 ‘반미 기간’인 지금 허드너에게 방북 허가를 내준 것은 국제 사회의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이를 북한이 대화 재개를 원한다는 일종의 유화적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분석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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