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최용해엔 합동훈련 거절 … 정승조엔 마오타이 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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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고위군사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정승조 합참의장이 방중 이틀째인 지난 5일 판창룽(范長龍) 중국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합참·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최용해 총정치국장이 지난달 24일 판창룽 부주석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중국 측은 판 부주석과 정승조 의장의 면담 일정을 우리 측엔 미리 알려줬지만 최용해 특사와의 면담은 당일 통보했다고 한다. 정 의장과 만났을 때 보인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최 특사와 면담 땐 서먹한 분위기가 엿보인다. [사진 합참·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우려한 고육지책인가. 북한이 16일 북·미 당국회담 카드를 빼든 걸 두고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선 이런 평가가 나왔다. 특히 지난달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최용해 총정치국장이 변화된 중국의 분위기를 감지했고, 대화국면으로 난국을 타개해보려는 김정은의 ‘원산구상’으로 구체화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북·중 군사교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16일 익명을 요구하며 “최용해 총정치국장이 방중기간 중국에 북·중 연합군사훈련을 제안했다”며 “그러나 중국군 고위 당국자들이 이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 국장 방중 전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도 중국 측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며 “방중 기간 최 국장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북·중 우호협력과 선대(先代) 때부터 맺어왔던 양국의 친선협력을 강화하자는 명분을 앞세워 군사훈련 문제를 제기했지만 판창룽(范長龍)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팡펑후이(房峰輝) 중국군 총참모장이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거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용해 일행은 당시 중국 측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판 부주석 접견 시간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귀국행 항공편의 출발을 두 차례나 연기한 채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이 과거 중국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을 환대하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고 전했다. 과거 북한과 중국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치(脣齒)관계임을 부각해온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사건’들이다.

 반면 63년 전 중국군의 한국전 참전으로 총부리를 겨눴던 한·중관계는 순풍을 맞고 있다. 실제로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한 정승조 합참의장 일행을 맞은 중국 군부의 자세는 최용해 특사 때와 판이했다. 중국은 방문 이틀째 오전 비공개를 조건으로 정승조 의장-판 부주석 면담 일정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중국 측은 특히 정 의장 환영 만찬 때 세계 3대 명주로 꼽히는 마오타이주를 여러 병 내왔고, 마지막에는 혼합주(폭탄주)를 만들어 양국의 우의를 과시했다. 시진핑 주석 체제가 출범하면서 만찬 때 예술단 공연과 술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우리 측 대표단에는 예외적으로 음주를 허용한 것이다. 마오타이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 간에 이뤄진 국교 수립 때 건배주로 사용됐던 상징적인 술이다.

 군사훈련 때 참관단을 파견키로 하는 등 한·중 간 군사협력도 한층 강화된 모습이다. 앞서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정 의장이 우리 공군의 C-130 수송기를 타고 방문토록 허용하고 ▶정 의장의 북해함대 방문 때 자신들의 전용기를 내줬으며 ▶중국군 북해함대 지휘부에서 우리 해군 2함대와 연결된 직통전화를 이용해 통화토록 했다.

 최용해 특사 방중 직후 중국을 방문, 판 부주석과 만난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중국 사람들은 술을 거나하게 마시면서 ‘다거(大哥·형님)’라고 할 수 있는 관계가 돼야 진정한 친구로 여긴다”며 “중국 명주인 마오타이주를 마시면서 ‘다거’라고 부르며 양국 관계 발전을 약속하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중 혈맹관계를 이끌어온 마오쩌둥·덩샤오핑(鄧小平) 주석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김정일 위원장 등 선대 지도자들이 사망하면서 관계가 퇴색하고 있다. 그러나 한·중 국교수립(1992년) 20년을 넘기면서 한·중관계는 긴밀해지고 있다. 인간적 유대를 중시하는 중국의 ‘관시(關係)’ 문화에 한국이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육군 3군야전군 사령부와 중국 지난군구(濟南軍區)가 2005년 자매결연을 맺은 이후 매년 지휘관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3야전군 사령관 출신인 민주당 백군기 의원은 “2005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3군사령관일 때 지난군구와 자매결연을 맺었다”며 “사령관을 그만둔 뒤에도 중국을 찾아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판 부주석도 지난군구 사령원(사령관)을 지내면서 한국과의 관계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군구 지휘부가 한국을 방문할 땐 우리 군인들과 목욕을 함께하는 등 우의를 다져 왔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3군사령부 출신 관계자는 “중국군 고위 인사들은 집단으로 목욕하는 걸 기피하지만 함께 목욕을 한 뒤 한층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최윤희 해군참모총장과 성일환 공군참모총장도 올해 안에 중국을 방문해 협력 관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정용수 기자

◆마오타이주(茅台酒)=수수(고량)를 주원료로 하는 증류주. 중국 청나라 때부터 구이저우(貴州)성 마오타이 마을에서 만들기 시작해 마오타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알코올 함량은 약 55%. 현재까지 14개의 국제적인 상 을 휩쓸면서 수이징팡(水井坊), 우량예(五粮液) 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로 꼽히고 있다. 이달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정상 만찬 때도 마오타이가 건배주로 등장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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