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00만에 … ‘EU 수도’ 벨기에의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경상남북도 크기(3만529㎢)에 1000만 명이 모여 사는 ‘초콜릿과 와플의 나라’ 벨기에. 이 나라에는 유달리 공동묘지가 많이 눈에 띈다. 중국·일본 사이에 낀 한반도처럼 독일·프랑스·영국에 둘러싸인 이 작은 나라가 독일의 침략 등 주변 강대국의 등쌀에 역사적으로 수난을 겪은 증거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약 70년이 흐른 지금 벨기에 브뤼셀은 유럽연합(EU)의 수도로 변신해 있다. EU·세계무역기구(WTO)·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130여 개의 국제기구 본부가 들어선 유럽의 중심이 됐다. 박준우 전 EU 대사는 “유럽의 정치와 경제 통합을 위해 적극 나선 덕분에 벨기에는 지정학적 단점을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벨기에는 관세동맹(1944년)을 시작으로 유럽 통합의 중재자 겸 촉진자 역할을 해냈다. 유럽 통합의 씨앗을 뿌린 폴 앙리 스파크 전 벨기에 총리는 ‘EU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이런 공헌 덕분에 반롬푀위 벨기에 전 총리가 2009년 11월 ‘EU 대통령’으로 불리는 EU 집행위원회 상임의장이 될 수 있었다.

 박 전 대사는 “국력이 우리보다 약한 벨기에도 유럽 통합의 중심 역할을 해냈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아시아 시대의 도래에 맞춰 ‘코리아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를 찾아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한국을 둘러싼 대외 환경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화민족 부흥’을 내세운 중국의 ‘굴기(우뚝 일어섬)’ 전략에 맞서 미국은 ‘전략 중심의 아시아 이동(pivot to Asia)’ 외교를 진행하고 있다. 중·일은 아시아 맹주 자리를 놓고 청일전쟁(1894~95) 이후 가장 심상찮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성신여대 김흥규 교수는 “이제 축적된 역량을 토대로 지정학적 변혁의 파도 위에서 서핑하듯 유연한 외교전략을 펼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세종연구소 이태환 중국연구센터장은 “펌프에 마중물을 먼저 부어야 물이 콸콸 넘치듯 강대국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다양한 어젠다를 주도적으로 제시하는 중견국(middle power) 외교에 시동을 걸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자외교를 넘어 한·미·중, 한·중·일, 남북+중, 남북+러, 한+아세안의 소다자(小多者) 외교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남북 교류 협력을 통한 신뢰회복이 먼저”(연세대 문정인 교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 긴장완화→미군 의존 단계적 축소→북·중 전략적 유대 감소→한국의 다자 안보외교 입지 확대로 가자는 발상이다.

[관계기사]

▶ 새 정부, 외교 과욕 피하고 주도권 잡으려면
▶ 싸이 말춤, 뽀로로…미래 국력 문화 + IT서 나온다
▶ 中전문가 "盧 정부 전략 틀려…새로운 길 모색해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