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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말춤, 뽀로로 … 대한민국 미래 국력 문화 + IT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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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싸이

지난해 11월 5일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 앞 광장. 2만여 명의 유럽인이 일제히 어깨 너비로 다리를 벌린 뒤 한쪽씩 다리를 들어올리며 카우보이처럼 오른팔을 머리 위에서 둥글게 휘두르고 있었다. 이들은 “나는 싸나이” “오빤 강남스타일~”을 한국어로 외쳤다.

 한국 가수 싸이의 말춤을 추는 플래시 몹(미리 정한 시간과 장소에 불특정 다수가 모여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위해 모인 관중은 싸이가 등장하자 환호하면서 이렇게 ‘떼춤’을 췄다. 유럽 각국에서 모인 2만여 명에게 한국어 ‘강남스타일’을 말하게 한 싸이의 힘. 바로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위력이다.

 소프트 파워는 문화와 예술, 지식, 가치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말한다. 군사력·경제력을 축으로 하는 ‘하드 파워(Hard Power)’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세계화로 국가 간 상호 의존과 연대가 강화됐습니다. 강압의 힘이 지니는 의미가 점차 사라지게 된 거죠. 상대국을 설득하고 공감시키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왔습니다. 한국엔 기회입니다.” 김우상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직후에는 하드 파워가 세계 외교를 지배했다. 냉전 체제에서 국력은 곧 군사력이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자본주의 체제가 번지면서 경제외교의 시대가 왔다. 한국은 부지런히 달렸다. 지난해 수출 세계 8위(1~9월 기준)를 기록했고, 국내총생산(GDP)으로도 세계 15위에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 60여 년간 군사력과 경제력만 따지는 하드 파워의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강대국과 거리가 멀었다. 군사든 경제 규모든 세계 10위 안팎에 머무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도 이런 하드 파워를 바탕으로 한 전통 외교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 빠르게 발전한 정보기술(IT)이 많은 것을 바꿨다. 중동에 불어닥친 민주화의 바람, ‘아랍의 봄’이 대표적이다.

 국립외교원 조양현(정치외교학) 교수는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한국 드라마와 K팝은 국가 브랜드를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소프트한 분야야말로 한국이 다른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진단했다.

 싸이의 말춤은 물론이고 우리 애니메이션 ‘뽀로로’는 120여 개국으로 수출됐다. 지난해 한식당 5곳이 세계적 권위를 가진 음식점 비평지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을 올렸다. 유튜브에서 K팝 동영상을 조회한 건수는 약 49억 회(SM·YG·JYP엔터테인먼트 기준)나 됐다. 2012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도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소프트 파워에서 한국은 미·중·일 주변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선도국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만의 개성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네덜란드 안트베르펜대의 얀 멜리슨 교수는 “특정한 이슈에 얽매이기보다 포괄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공적개발원조(ODA)는 한국이 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조양현 교수는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나간다고 해서 방향성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게 소프트 파워”라며 “정부는 민간이 잘할 수 있게 역량을 키워주는 보완 기능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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