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동 LP판, 영등포 댄스복 … 개성 찾는 지하도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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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영등포시장 지하도상가의 한 댄스복 점포를 찾은 고객(왼쪽)이 의상을 고르고 있다. 이 상가에서 댄스복을 취급하는 점포는 70여 곳에 이른다. [신인섭 기자]

9일 오후 서울 영등포시장 지하도상가.

 점포 쇼윈도마다 ‘반짝이’로 장식된 화려한 댄스복이 행인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속살이 보일듯한 시스루 소재의 긴 드레스와 몸에 착 달라붙는 짧은 원피스도 눈에 띄었다. 1977년 개장한 영등포시장 지하도상가에는 현재 70여 개의 댄스복 점포가 영업 중이다. 직장인 댄스스포츠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나화영(35·여)씨는 “유명 브랜드 의상은 한 벌에 30만~40만원씩 해 부담스럽다”며 “이곳에서는 그 돈으로 서너 벌을 구입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영등포시장 지하도상가는 과거엔 영등포 지역 유흥업소 종사자를 위한 무대의상을 주로 팔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주변 유흥업소가 대거 문을 닫은 데다 인근에 대형 백화점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3~4년 전부터 댄스스포츠가 인기를 끌자 점포들이 대거 댄스복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최영문 ㈜영등포시장지하쇼핑센터 대표는 “주말이면 댄스복을 찾는 손님이 많아 점포당 수십 벌씩 팔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는 영등포시장 지하도상가처럼 70~80년대 만들어진 지하도상가가 29개 있다. 처음에는 건널목을 줄여 교통난을 해소하고 비상시에는 대피용으로 쓰기 위해 조성됐다. 하지만 30여 년 영업을 해오면서 상가별로 특색 있는 품목을 취급하는 상권이 형성돼 매니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중구 충무로1가에 있는 회현 지하도상가는 225개 점포 중 절반 가까이가 오래된 LP음반과 우표·돈·카메라 등을 취급한다. 특히 CD와 MP3에 밀려 자취를 감춰버린 LP음반을 판매하는 가게가 20여 개나 된다. 가게마다 수만 장의 LP음반을 소장하고 있고 개당 1만~2만원에 팔린다. LP음반점 ‘파스텔’의 신재덕(57) 사장은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게 LP의 매력”이라며 “디지털음이 아닌 ‘따뜻한 소리골’을 선호하는 LP 매니어가 여전히 많다”고 소개했다. 대학원생 안희용(29)씨는 “우연히 술집에서 듣게 된 LP의 매력에 빠져 종종 이곳에 들러 판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종로 5가 지하도상가는 한복·침구·예물 상점들이 모여 있어 결혼 준비에 안성맞춤이다. 신당 지하도상가에는 금속·목공예·사진 등 공방 작가들이 모여 작품을 만드는 ‘신당창작아케이드’가 있다.

 이들 지하도상가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횡단보도 때문에 영업에 적지 않은 지장을 받고 있다. 지하도 이용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영등포역 지하도상가 위에도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최지윤(49) 영등포역지하도상가 상인회장은 “보행자 이동권만큼 지하도상가 상인의 생존권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용우 서울시 교통개선팀장은 “무단횡단 방지와 노약자 보행권을 위해 횡단보도 설치는 어쩔 수 없다”며 “지하도상가 상인들과 협의를 거쳐 절충점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최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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