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통일부가 많이 아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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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요즘 통일부가 어수선하다.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떤 풍파가 불어닥칠까’ 하는 걱정에서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누가 MB(이명박) 정부에서 뭘 했는지, 다음 정부에서 퇴출 대상에 오를 사람은 누군지를 적어놓은 살생부(殺生簿)가 나돈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온다. 다른 부서보다 유난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정권교체로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통일부는 5년 전 대통령직 인수위에 의해 부처 폐지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맞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햇볕정책 추진에 적극 관여했던 간부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옷을 벗었다. 청와대에 파견근무 중이던 2007년10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조명균 국장은 시범 케이스로 당했다. 떠나는 이들 사이에선 ‘마치 적(敵) 점령하에서 부역한 사람 취급을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살아남은 직원 중 상당수도 보직대기 상태에서 속칭 ‘삼청교육대’라 불리는 과거 정부 때 벗기기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한 직원은 “하루는 고위 간부가 교육 대상 직원을 모아놓고 강연을 했는데 ‘이전 정부 때의 썩어빠진 정신으로 일해선 안 된다’고 말해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고 말했다. 그 간부가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정책을 주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실세 장관의 보좌관을 지낸 한 간부를 두고는 ‘보직도 주지 말고 진급도 시키지 말라’는 내부지침이 내려져 있다는 얘기가 직원 사이에 돌았다.

 야당의 지원사격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 통일부와 그 직원들이 MB정부의 대북·통일 정책 추진에 신명을 바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일손을 잡았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한 핵심 과장은 술에 취해 기자를 부여잡고 “MB정부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요”라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통일부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 간부들 대부분은 김대중 정부 초기부터 정상회담과 남북대화·교류 등 햇볕정책의 화려한 모습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 변변한 회담 한번 없는 상황을 달가워할 리 없었다. “통일부 살려줬더니 하는 게 없다. 차라리 없앨 걸 그랬다”는 야당 의원들의 독설은 비수가 돼 통일부 구성원들을 다시 한번 상처받게 했다.

 이런 시련 속에 통일부 직원들은 ‘더 이상 정치 소용돌이에 통일부와 대북정책이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대선 정국에서 대북 노선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면서 헝클어지는 형국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통일부 장관들이 줄지어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이들이 ‘어게인 햇볕정책’을 외치며 물줄기를 다시 돌리겠다고 공언하자 어떤 여파가 미칠지 긴장하고 있다. 한 직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장관 중 한두 명을 빼곤 대부분 ‘먹튀’였다”고 말했다. 조직의 발전보다 장관 자리로 개인의 실리를 챙기는 데 신경 썼다는 얘기다. 통일부는 ‘우리를 제발 흔들지 말아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아플 만큼 충분히 아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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