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증세 말하던 안철수 ‘간이과세자 확대’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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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국세청·감사원부터 민주노동당·참여연대까지, 색깔과 성격이 다른 국내외 단체가 유독 간이과세제도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간이과세 기준 금액을 올리지 말라고 권고하거나 아예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런 논란이 더 불거지게 됐다. 28일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 측이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런 주장과 정반대 공약을 내놓은 것이다. 영세사업자의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영업자의 간이사업자 기준을 연매출 4800만원 이하에서 9600만원으로 높이겠다는 내용이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연매출액 4800만원 미만인 사업자는 간이과세자로 분류된다. 간이과세자가 되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고 세금을 신고·납부하기도 편하다.

 간이과세 확대에 대해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자영업자의 ‘표심(票心)’을 노린 일방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간이과세자가 늘어나면 상호 검증되는 세금계산서 발급 대상이 축소돼 과세자료 양성화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간이과세자가 늘어나면 덩달아 일반과세자도 탈세의 유혹이 커진다. ‘일반과세자→간이과세자→일반과세자’로 이어지는 거래처럼 중간에 간이과세자가 끼면 세금계산서를 주고받는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과세자료가 노출되지 않으면 부가가치세뿐만 아니라 소득·법인세와 공적 보험료도 은근슬쩍 줄이고 싶은 유인이 생긴다. 과거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가 간이과세제도의 폐지를 요구했던 것도 이런 탈세를 막자는 취지에서였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난 1년간 간이과세 기준 금액을 유지해 세원을 투명하게 하려는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 일시에 후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세원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근로자·일반과세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피할 수 없다. 부가가치세는 소득세·법인세 과세표준을 계산하는 기초가 된다. 간이과세자의 경우 아무래도 소득 파악이 힘들다. 이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꼬이게 할 수 있다. 정부는 사업자에게도 2014년 소득 발생분을 기준으로 2015년부터 근로장려금(EITC)을 지급할 예정이다. EITC는 일은 하지만 소득이 낮아 생활이 어려운 가구를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 관계자는 “소득 파악이 안 되면 근로장려금 지급 근거가 약해지고, 부정 수급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수도 줄어든다. 안 후보 측은 7482억~9855억원의 세수 손실을 예상했다.

 안 후보는 7월 출간한 『안철수의 생각』에서 ‘보편적 증세’를 주장했다. 복지 혜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려면 중하위 소득계층도 형편에 맞게 비용을 나눠 부담해야 한다는 거다. 국민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측면에선 바람직한 접근이다. 하지만 간이과세 확대와는 서로 배치된다. 이영 교수는 “보편적 증세론과 간이과세 대상 확대는 서로 충돌하는 정책”이라며 “간이과세 기준을 높이면 소득을 누락하고 세금을 덜 내는 사업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 ‘투명지갑’을 가진 봉급생활자들이 안 후보의 보편적 증세론에 동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간이과세제도=기장 능력 등이 부족한 소규모 영세사업자의 부가가치세 신고·납부 편의를 위해 도입된 제도. 기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세금계산서 발행 의무도 없다. 신고·납부 횟수도 일반과세자보다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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