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법원 상고심 개혁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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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대법원 상고심(최종심) 개혁 작업이 표류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도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를 구성해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입법부와 사법부의 이견 속에 무산되고 말았다. 상고심 개혁은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와 직결된 사안이란 점에서 이처럼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는 것은 국회와 법원 모두의 직무유기다. 곧 문을 열 19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상고심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해결해야 한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0년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심 본안 사건은 3만6418건으로 10년 전(1만8960건)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1인당 3035건씩 처리해야 할 판이다. 하루에 8.3건 꼴로 처리해야 하는 셈이어서 도저히 사건 하나하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형사사건이 아닌 경우 법에 규정된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더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3심제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 실제로 구체적인 판결 이유도 기재하지 않은 채 통보하는 심리불속행 제도에 사건 당사자와 변호사들의 불만이 크다. 게다가 선고가 몇 년씩 미뤄지는 미제 사건도 적지 않은 형편이다.

 이에 대해 대법관 수를 대폭 늘려 사건을 충실하게 심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사개특위 소위는 20명으로, 대한변협은 50명으로 증원하자고 했다. 그러나 사건 증가세로 볼 때 대법관 수를 늘려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대법관 수를 지금보다 늘린다면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토론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대법원의 설명에도 일리가 있다.

 근본적인 대책은 1심과 항소심(2심)에서 당사자들이 승복할 만큼 충실한 심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사건을 굳이 대법원까지 끌고 갈 필요가 없게끔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재판부 간 편차를 줄이고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렇게 1·2심을 강화한다는 전제 아래 현실성 있는 대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중요 사건만 담당하고 별도의 상고법원에서 그 밖의 상고 사건을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과 상고 사건을 걸러내는 상고심사부를 고등법원에 두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대법관 1명과 대법원 판사 2명씩으로 12개의 소부(小部)를 꾸리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이원화 방안 역시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어떤 방안이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위축시키거나 재판 비용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상고심 개혁의 초점은 대법원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이자 정책 법원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권리구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19대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안이란 인식을 갖고 국민 입장에서 합의를 도출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