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저출산 해소, 일·가정 양립이 답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전 세계 222개 국가 가운데 217위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는 지난해 1.24명에 불과하다. 결혼과 임신,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들이 늘어난 탓이 가장 크다. 결혼을 늦추려 한다. 결혼하더라도 임신과 출산을 연기하고, 출산하더라도 가급적 자녀 수를 적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여성을 탓할 순 없다. 임신과 출산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받는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세계에서 가장 긴 근로시간에서 아이를 키우기가 쉽겠는가. 임신과 출산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조직이 태반 아닌가. 승진이 제때 안 되고 고과도 나쁘게 주는 게 우리의 조직 풍토다. 심지어 사직 권고도 빈번하다. 힘들게 버티는 여성들도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대체로 직장을 그만두는 건 그래서다. 여성 중에서도 임신, 출산, 자녀 양육기간인 30~4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특히 낮은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면 저출산 대책의 핵심은 여성들이 일과 가정 모두에 전념할 수 있는 근무환경의 조성이다. 하루 평균 12시간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적어도 애를 키울 때만큼은 휴직기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일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신축적으로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도 적극 시행돼야 한다. 정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해 진작 그런 계획을 짜놓았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제2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핵심이 일·가정 양립의 일상화다.

 문제는 기업이다. 정부가 아무리 정책을 잘 짜도 기업이 실행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하지만 일·가정 양립을 시행하는 기업은 드물다.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휴직이나 유연근무제를 고까워하는 조직문화 탓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이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 반갑고 다행스럽다. 삼성전자는 원격근무가 가능하도록 스마트워크 센터를 설립해 출퇴근 시간을 대폭 줄여줬다. 12세 이하의 자녀를 키우는 직원들이 최대 1년 정도 휴직할 수 있는 육아휴직제도 시행하고 있다. KT도 스마트워크 센터를 개설했고,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 릴리 역시 2005년부터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제를 시작했다. 정부 부처 중에선 특허청이 가장 활발하다. 시차 출퇴근제와 재택근무제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물론 일본보다도 한참 뒤처진다. 일본 소니만 해도 삼성전자보다 잘 돼 있다. 1년6개월 이상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은 물론 하루 6시간 일하는 단(短)시간 근무제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돼 있다.

 더구나 제도조차 없는 기업들이 아직도 태반이다. 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유연근무제와 육아휴직제를 도입한 기업은 각각 20%, 50%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제도가 도입돼 있는 기업도 이용률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육아휴직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직원은 열 명 중 한 명이 채 안 된다. 유연근무제는 100명 중 두 명꼴이다. 기업들은 돈이 든다는 이유로 도입을 꺼린다. 도입한 기업들도 승진 및 인사고과의 차별이 여전하다. 회사 밖에서 일한다든지, 정시 퇴근을 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기업문화 속에서 이 제도를 사용할 간 큰 직원은 많지 않다.

 이제는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일·가족의 양립 지원이 기업 성과를 높인다는 건 외국에서 이미 입증됐다. 업무 만족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낮추며, 생산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자리도 대폭 늘린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난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 부담이 큰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이 당분간 필요할 것이다. 기업도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를 사용한 직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평가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는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다. 장시간 근로 관행을 바꾸지 않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인 생산성과 고용률을 절대로 높일 수 없다. 일·가정의 양립으로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한 돈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정부와 기업의 인식이 확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