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이버 불링’도 학교폭력법 처벌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수도권 중학교에 다니는 혜진(가명·중2)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끝날 줄 알았던 따돌림은 인터넷을 통해 “우리 학교 왕따가 어느 중학교에 간다”는 소문으로 퍼지면서 중학교에서도 계속됐다. 혜진이를 욕하는 저주 카페가 생겼고 그의 얼굴과 영화 속 괴물을 합성한 사진이 카페에 올라왔다. 이를 본 혜진이는 충격을 받았고 결국 지난해 2학기 휴학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학교폭력이 진화하고 있다. 카카오톡 등 인터넷 메신저나 카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24시간 상대를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 그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해 초·중·고생 126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5명 중 한 명꼴로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놀림·욕설·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왕따를 당하는 여학생의 휴대전화번호를 인터넷 성매매 사이트에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은 “정보통신망을 통한 괴롭힘도 학교폭력으로 본다”고만 정의할 뿐 구체적인 방식이나 처벌에 대한 규정이 없다. 경기도의 한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위원은 “구타나 금품 갈취도 그냥 넘어가는 마당에 사이버 불링은 학폭위 안건으로 올라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본지는 학폭법에 사이버 불링의 정의와 처벌을 명확히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사이버 불링=범죄’라는 인식을 심어 주자는 것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사이버 불링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처벌조항과 교육 프로그램도 두고 있다. 올 1월 현재 51개 주(州) 가운데 14개 주에서 사이버 불링의 정의와 처벌에 관한 별도 조항을 제정했고, 6개 주는 입법 준비 중이다. 김건찬 학교폭력예방재단 사무총장은 “사이버 불링의 범위를 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학교에서 혼란이 없다”고 말했다. 경인교대 임상수(윤리교육학) 교수는 “사이버 불링도 신체적 폭력과 마찬가지로 무관용 원칙에 따라 처벌하고 심리치료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한길 기자

법률 두루뭉술한 한국

학교폭력이란 상해·폭행 …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처벌 조항도 명시한 미국

e-메일·문자·채팅·휴대전화 등 IT 기기를 통해 다른 학생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위를 ‘사이버 불링’이라고 한다. 모든 학군은 이를 금지하는 강제조항을 둔다. (유타주 )

사이버 불링을 금지하는 정책을 만드는 자문위원회를 둔다. 이 위원회는 학부모·학생 교육 프로그램도 수립한다. (워싱턴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