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한미군, 장병 교육 제대로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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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호 02면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 주한미군사령관이 2만8500명의 주한미군에 대해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앞으로 30일 동안 평일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주말·공휴일에는 오전 3~5시 사이에 부대 밖 통행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경기도 동두천과 서울 마포에서 주한미군이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터진 데 따른 것이다. 2009년 3건이던 주한미군 성범죄는 지난해에는 10건으로 늘어났다.

성폭행 사건은 그 자체가 추악한 범죄다. 한창 자라나는 어린 소녀들의 영혼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성별이나 지위, 연령과 상관없이 엄단해야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 성폭행은 일반 성폭행을 뛰어넘는 민감성을 내포하고 있다. 가해자가 외국 군인이고 피해자가 현지 민간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자칫하면 민족감정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일본의 오키나와가 좋은 사례다. 1995년 미 해병들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터지자 주민들은 미군기지 철폐를 외쳤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사과했다. 그런데도 미군의 성범죄는 그치지 않았다.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미·일 정부가 오랫동안 갈등해온 요인 중 하나다. 해외주둔 미군들은 ‘오키나와의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한국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여고생 2명이 치어 사망한 사건은 노무현·이회창 후보가 맞붙었던 대선 판도에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했다. 좌파 단체들이 “미군이 여고생을 (고의로) 깔아죽였다”는 식의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했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외국 군인에 의해 자국 민간인이 피해를 보았을 경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한·미 관계는 요즘 미묘하다. 미국 의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4년 넘게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서두르고 있다. 다음에는 우리 국회가 비준할 차례다. 이런 마당에 미군 성폭행 사건 같은 게 터지면 FTA를 통한 ‘동맹의 업그레이드’는 국민정서상으로도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은 또 10·26 서울시장 보선과 내년 총선(4월), 대선(12월)을 앞두고 있다. 미군의 범죄에 의해 한국 선거가 영향을 받는 불행한 사태가 또다시 있어선 안 된다.

어느 군대나 ‘일탈 장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폭행 사건이 빈발하는 이유가 뭔지 주한미군 측에 묻고 싶다. 제대로 된 장병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그걸 막을 제도적 장치는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정부도 단호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조항에 얽매어 ‘현행범이 아니면 구속할 수 없다’고 발뺌만 해선 안 된다. 미군 범죄에 대한 관할권을 더 넓혀야 한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일벌백계도 필요하다. ‘쓴 약’을 삼켜야 한·미동맹의 체질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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