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적천석’ 이건희, 지구 8바퀴 돈 조양호 … IOC 위원 마음 녹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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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통화하고 싶었는데 연결이 잘 안 돼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간 평창 유치에 보여준 관심과 지지에 감사 드리며 더반에서 꼭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게 남겼다는 음성메시지다. 열 번째 통화에서도 자동응답기가 작동되자 이 대통령은 이런 ‘아쉬운 마음’을 남겼다고 한다. 같은 달 30일 열한 번째 수화기를 들었고 6분30초간 통화할 수 있었다. ‘공부하는 선수’로 알려진 그 위원에게 이 대통령은 “운동선수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고 결국 마음까지 샀다.

 이렇게 이 대통령과 IOC 위원들과의 통화는 시도 때도 없었다. 밤 11시 청와대 관저에서도, 오전 8시 국민경제대책회의 도중에도 이뤄지곤 했다.

 지난달 7일엔 100여 명의 IOC 위원에게 서한을 보냈다. 위원 하나하나의 관심사와 이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를 반영한 ‘맞춤형’ 서한이었다. 해당 위원의 모국어와 한국어로 작성한 서한은 우편이 아닌 인편으로 보냈다.

 이 대통령이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국가 과제로 정한 건 2009년 11월이었다. 당시 평창에서 유치위 관계자들에게 “반드시 유치에 성공하자”고 다짐했다. 올 2월 IOC 실사단이 평창을 찾았을 때도 유치위 관계자들에게 “무슨 일이든 시켜라.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었다.

 이 대통령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5월 한·중·일 정상회의를 비롯해 정상외교 때마다 평창 지지를 호소하곤 했다. 해외 순방 중엔 해당국 IOC 위원들을 꼭 챙겼다. 방한하는 IOC 위원들과도 비공개 만남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정상외교로는 이례적으로 5일간 더반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유치 못하면 오히려 부담일 수 있다”는 일부 참모의 만류도 뿌리쳤다. 3일부터 5일까지는 24시간을 쪼개 IOC 위원들과 만났다. ‘청와대 경호가 IOC 위원을 자극할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총회가 열리는 건물에서 아예 경호원을 철수시켜버리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더반에 도착하자마자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늘을 움직이자”고 했다. 결국 그는 하늘, 즉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토니 블레어(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 블라디미르 푸틴(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룰라 다 시우바(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여름올림픽)가 그랬듯이 말이다.

더반=고정애 기자

유치 성공 주역들

지난 2월 강원 강릉실내체육관. 평창의 겨울올림픽 준비 상황을 둘러보러 방한한 실사단이 이곳에 들어서자 조용한 합창이 울려퍼졌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아바(ABBA)의 ‘내겐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였다.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의 염원이 담긴 노래였다.

 마침내 그 꿈이 이뤄졌다. 재계와 정치권 인사들도 힘을 보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표를 그러모았다. 지난해 초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의 IOC 총회까지 1년반 동안 170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그동안 100명이 넘는 IOC 위원을 거의 모두 만났다. IOC 위원들과 식사를 할 때는 상대방 이름을 수놓은 냅킨을 만들어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지난해 하반기 해외에서 열린 IOC 행사 때는 저녁 약속을 한 IOC 위원이 갑자기 연락해 “다른 급한 일 때문에 많이 늦어질 것 같으니 약속을 취소해야겠다”고 했다. 이에 이 회장은 “얼마든지 기다리겠다”며 당시 1시간30분을 기다려 결국 상대를 만났다.

 한 IOC 위원은 마음을 돌려 놓으려고 세 번을 만나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수적천석(水滴穿石)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수적천석이란 ‘물방울이 수도 없이 떨어지면 돌을 뚫는다’는 것으로,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거듭해 목표를 이뤄낸다는 말이다.

 유치위원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년간 지구 8바퀴가 넘는 34만8455㎞를 돌았다.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영국의 연설 전문가까지 찾아 특별 레슨도 받았다. 그는 더반 총회를 앞두고 외신 인터뷰에서 “평소 잠을 잘 자는 체질인데 최근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과거 IOC 위원을 지내며 다진 인맥을 십분 발휘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아예 유럽에서 눌러 살다시피하며 득표 활동을 했다.

 과거 유치 실패의 쓴맛을 봤던 김진선 전 강원지사는 이번에 특임대사로 힘을 보탰다. 2010년 유치 때부터 평창을 알리기 위해 김 특임대사가 움직인 거리는 지구 22바퀴(87만6533㎞)에 이른다. 이 밖에도 문대성 IOC 선수위원과 강광배 스포츠 디렉터는 특유의 친화력과 국제 스포츠 인맥을 활용해 유치활동에 나섰다.

권혁주·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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