믈라디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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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33면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는 민족문제가 복잡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지역이다. 다민족 국가 유고슬라비아(1918~92)는 그중 압권이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까지 무려 6개 주권국가로 분열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다민족 국가 유고 안에서도 특히 다민족인 지역이었다. 동방정교 세르비아인과 가톨릭 크로아티아인, 그리고 무슬림(이슬람 교도) 등이 모여 산다. 같은 슬라브족이고 말도 같다. 통혼도 잦다. 정체성만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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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공산 독재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1892∼1980)의 유고 통치기(1945~80)엔 비교적 조용히 지냈다. 그는 냉전시대에 비동맹을 내세웠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였다. 그 결과 양쪽에서 원조를 얻었다. 덕분에 유고는 70년대까지 번영했다.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드물게 국민이 자가용차를 몰고 해외여행을 즐겼다. 나라가 잘사니 민족문제 따윈 쑥 들어갔다. 하지만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고 냉전이 종식돼 이용가치가 없어진 유고는 찬밥 신세가 됐다.

그러자 각 민족이 들고 일어나 제 나라를 세웠다. 다민족 보스니아에선 내분까지 일어났다.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들은 세르비아 본국과의 통합을 주장했다. 다른 민족들은 반대했다. 이 때문에 92~95년 내전이 벌어졌다. 정체성 차이가 피를 불렀다. 450만 주민 가운데 2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중재에 나서 95년 데이턴 평화협정을 맺게 했다.

26일 세르비아 당국에 체포된 라트코 믈라디치(69)는 보스니아 내전의 전범이다. 내전 중 세르비아계 참모총장이었다. 무슬림과 크로아티아인을 인종 청소하고 그 땅을 세르비아 본국과 합친다며 대량 학살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95년 6월 스레브레니차 학살과 92년 시작된 사라예보 포위 공격을 주도했다. 각각 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믈라디치의 아버지는 나치와 파시스트에 맞서 싸운 빨치산이었다. 종전 직전인 45년 봄 전사했다. 무용담을 듣고 자란 라트코 믈라디치는 사관학교를 우등 졸업했다. 상으로 받은 권총을 평생 자랑스럽게 간직했다. 하지만 94년 베오그라드 의대에 다니던 23세 된 딸 안나가 그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가 ‘보스니아의 학살자’로 손가락질을 받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일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믈라디치가 자기 민족 이익을 위해 타 민족과 싸운 것이라며 그를 변호한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주의를 앞세워 이웃을 말살하려는 사람은 단죄 받아야 옳다.
그를 체포하면서 세르비아는 비로소 정상국가로 인정받아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간 세르비아는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전범들을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 EU 가입이 거부돼왔다. 이제야 오욕의 과거사를 청산했다. EU 가입은 세르비아 국민의 희망이다. 믈라디치는 세르비아를 위한다며 세르비아가 원치도 않는 일을 벌이다 세르비아의 발목을 잡은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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