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은다는 것, 비운다는 것, 그리고 떠난다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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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호 07면

말수가 적었던 소년의 취미는 소소한 것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봉투를 찍어내는 빛 바랜 나무틀도, 견장을 넣어두었던 8자형 함도, 듬성듬성 사라진 나비들로 이가 빠진 듯한 나비표본 액자도 그는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 그 속엔 어린 시절의 냄새와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아버지가 가져다 주신 도쿄올림픽 카탈로그나 마루 한편에 있던 거무튀튀한 무쇠 선풍기, 적산가옥 마당에서 파낸 아담한 백자 수반 역시 그 시절 풍경화를 구성하는 추억의 오브제다.

'구본창 Koo Bohnchang'전, 3월 24일~4월 30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문의 02-733-8449

‘백자’ 사진 연작 등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구본창(58)이 30여 년간 자신의 작품 세계를 추동한 동력을 공개했다. 그것은 바로 ‘낡음’과 ‘이름 없음’에 대한 잔잔한, 하지만 식지 않은 애정이었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것, 모퉁이 한편에 서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텅 빈, 그래서 채워지길 기다리는 것에 대한 애정이 백자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집안 곳곳은 이 같은 ‘소소한’ 물건들로 그득했다. 전시기획자 김성원씨가 눈여겨본 것도 ‘모은다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수집품에서 작가의 혼이 담겨 있는 그 어떤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기에. 이번 전시의 화두가 ‘컬렉션’으로 된 이유다. 1층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다락방을 끄집어내놓았다면 2층은 다른 이의 컬렉션을 사진으로 재구성한 공간이다.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모았던 검정 곱돌 그릇, 건축가 이타미 준이 수집한 손때 묻은 달항아리들, 구한말 프랑스 선교사가 가져갔던 신기가 서려 있는 듯한 각종 탈들을 찍은 사진을 모았다.

특히 국내 한 개인 컬렉터가 제공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각종 다기, 문방구를 찍은 사진을 보면 쉽게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일렬 종대로, 때론 이열 종대로 나란히 앉아있는 백자들의 아우성이 귓가를 사정없이 때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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