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의 혜안? … 이달 초 중동 순방서 “아랍 정정 불안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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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기관들과 정체된 정치질서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아랍권의 지도자들은 점증하는 불안정과 극단주의, 심지어는 폭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사진) 미 국무장관의 지난 13일 ‘도하 연설’ 가운데 한 대목이다. 튀니지에 이어 예멘·이집트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중동 사태를 마치 예언했다는 평가가 국제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클린턴은 이달 초부터 아랍에미리트·오만·예멘·카타르 등 미국과 우호적인 중동 4개국을 순방했다. 순방 중 튀니지에서 반정부 시위 사태가 발생했다. 사태를 지켜보던 클린턴은 13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래포럼에서 아랍 국가들의 개혁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당시 연설은 아랍 국가들에 매우 도발적이었으며, 다소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클린턴은 연설에서 “중동 지역 국가들의 많은 토대가 모래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며 “새롭게 역동적인 중동을 만들기 위해선 어느 곳에서나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더욱 단단한 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데 중동 지역이 갖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클린턴은 이어 직설적으로 “몇몇 국가에서는 국가 경영에 진전이 있었지만, 많은 중동 지역 국민은 부패한 정부와, 썩은 물처럼 고인 정치 질서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 뒤 “(기존 체제를) 어느 정도 현상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영원히 그럴 순 없다”며 “지도자들이 해당 국가의 젊은이들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커다란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것은 우리 모두의 리더십에 대한 시험이며,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다만 클린턴은 이집트에 대해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다소 맞지 않는 진단을 했다. “우리의 평가로는 이집트(무바라크) 정부는 안정적이며, 이집트 국민의 합법적인 요구에 대해 대응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한 것. 클린턴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미국 정부의 희망 섞인 상황 판단이 담겼다는 견해가 많다.

 클린턴은 이집트 사태가 발생한 뒤 “이번 시위는 이집트 사회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불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집트 정부는 폭력적 진압이 이러한 불만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통신서비스에 대한 봉쇄조치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이집트 정부에 촉구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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