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明 대신 淸 택해야 했다”는 청융화 대사에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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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30면

혈맹의 틀로 한·미 관계를 보면 ‘F-35 스텔스기 공동개발 한국 누락’은 불쾌한 사태다. 스텔스기는 김정일에게 공포다. 몰래 침범해 휘저어도 대책이 없다. 막강 스텔스는 한국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스텔스의 지존인 F-22는 사지 못한다. 기술 유출 걱정 때문에 현재 해외 판매 금지다. 대신 F-22의 보급형으로 1990년대에 개발이 시작된 게 F-35 스텔스기다. 미국은 2002년까지 9개국을 공동 개발로 끌어들여 지금 거의 완료했다. 그런데 뜻밖에 9개국엔 한국이 없다. <중앙sunday 1월 2일자> 9개국은 영국·네덜란드·캐나다·덴마크·노르웨이·터키·호주와 옵서버인 이스라엘·싱가포르다. 한국에 절실한 걸 미국도 알 텐데 왜 그랬을까. 방위사업청 담당자에게 물었다.

안성규 칼럼

“이상해서 확인해 봤어요. 그런데 1999~ 2000년 미 정부가 공동 개발을 모집했는데 한국엔 요청도 안 했더라고요. 그랬다면 도입이 쉬웠을 텐데….”

미국이 요청도 안 했다니 뜻밖이다. 참가비가 엄청난 것도 아니다. 95년 첫 참가국 영국이 20억 달러, 2002년 마지막 선수 호주가 1억5000만 달러다.

미국은 ‘공동개발’ ‘안보협력’ ‘대외군사판매(FMS)’ 3개 기준으로 무기를 수출한다. 짐작하듯 동맹 구분 1·2·3 순위일 수 있다. 한국의 F-35 도입은 FMS, 즉 ‘돈 받고 팔지 말지’를 가린다는 것이다. ‘혈맹’ 틀에서 보면 모욕이다. 3급 동맹이란 것 아닌가.

‘미국=혈맹’이란 인식은 6·25에서 출발했다. 전쟁을 겪었거나 공산당에 치를 떠는 세대엔 그렇다. 백선엽 장군의 6·25 자서전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에도 미국에 대한 감사가 넘친다. 요즘 사람들도 좌파가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할 듯하다. 그러나 순 짝사랑이다.

6·25를 미국 관점에서 쓴 더 코울디스트 윈터의 저자 데이비드 헬버스템은 1000여 쪽 책에서 ‘혈맹은 무슨’이라며 냉소한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6·25는 공산화된 중국을 탈환할 기회였고, 인천상륙작전은 그 도구였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에 진절머리를 쳤다. 6·25는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벌어진 지겨운 전쟁이었다. 그래서 ‘한국=혈맹’이란 인식이 미국 지도부엔 낯설다. 한·미 관계 60년사엔 골 깊은 한랭전선이 잦았다.

혈맹의 정석은 오히려 북·중 관계가 보여준다. 시작은 6·25전으로 소급된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마오쩌둥(毛澤東)의 홍군은 장제스(蔣介石)에게 밀렸다. 동북 3성은커녕 국경 밖으로 쫓길 판이었다. 그때 북한이 압록강·두만강을 열어줬다. 그렇게 추격을 떼어낸 홍군은 김일성의 북한에서 쉬고 무기도 받았다. 홍군은 49년 중국 공산화에 성공했다. 북한이 없으면 혁명도 없었다.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조선 전사들은 북으로 대거 들어와 인민군의 주축, 6·25 남침의 주력이 됐다. 전쟁엔 20만 중공군이 참전했다. 북한이 천안함을 폭파하고 연평도를 공격해도 싸고 도는 북·중 혈맹 DNA는 그렇게 역사가 깊다. 착잡해도 한·미 관계는 혈맹이 아니고 ‘F-35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

F-35 공동 개발에 빠졌다고 ‘혈맹 배신’ 타령을 하는 게 유치할 것이다. 실제 이유가 기술 추격 걱정 때문일 수 있다. 일본이 빠진 것도 그 때문이란 말이 있다. 모집 시기가 한·미 관계가 비틀거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관점을 제기하는 것은 ‘F-35 사태’에 묻어나는 한·미 관계 주소가 중국 쏠림과 맞물려 우려를 일으켜서다. 중국은 이제 ‘까불면 손본다’고 한국을 위협한다. 한족의 해묵은 패권 의식이 또 살아났다. 위키리크스가 유출한 미 외교 전문에 따르면 청융화(程永華) 전 주한 중국대사는 2009년 “청이 명을 대체한 지 100년 지나도 조선은 명에 조공을 보내고 풍습과 전통을 고수했다”고 힐난했다. 떠오르는 중국(청) 대신 미국(명)에 붙지 말라는 것인가….

중국이 거칠어지자 ‘이명박 정부가 중국을 멀리하고 한·미 관계만 강화해 화를 자초한 것’이라는 국내 비판 수위가 높다. 그럴까? 막말로 ‘붙는다고’ 중국이 북한 대신 한국 편을 들까. 그렇게 되면 ‘혈맹도 아닌’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불편해도 중·북 관계에서 타산지석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건 ‘오랜 친구를 멀리하고 새 친구를 사귀라’는 게 아니다. ‘오랜 친구를 더 가까이 하라’는 것이다. ‘명 대신 청을 가까이 해야 했다’는 청(程) 대사의 취지는 틀렸다. ‘명·청 두루 친해야 했다’가 맞다. 그래도 친미근중(親美近中)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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