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MB 외교의 패러독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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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지난 3년을 회고해 보건대 이명박(MB) 정부의 외교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북한 버릇 고치기’ 강경 드라이브로 북을 궁지에 몰아넣었는가 하면, ‘비핵·개방 3000’과 ‘그랜드 바긴’ 구상으로 6자회담에 제동을 거는 데 성공했다. 어디 그뿐인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중국에 대해서도 보편적 규범의 잣대에서 할 말을 해왔다. 더욱 탄복할 만한 대목은 이 대통령의 탁월한 정상외교 덕에 한국 정부가 미국의 대북 및 6자회담 정책을 사실상 좌지우지해 왔다는 점이다. 가히 근래에 드문 놀라운 외교력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탐탁지가 않다. 대북 압박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는커녕 남북 교류 단절과 무력충돌이라는 6·25 이후 최악의 긴장 상태를 조성하고 있다. 한·중 관계 역시 주요 사안마다 파열음을 내며 수교 18년 이래 최저점을 치고 있다.

특히 걱정이 되는 것은 중국과 북한 간의 밀착이다. 한·중 관계가 악화될수록 그에 반비례해 북·중 관계는 강화되고 있다. 더구나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간 패권 경합이 가시화되는 듯하다. 이 와중에 일본은 보통국가로의 행보를 은밀히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 MB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3국 공조로 맞서 왔다. 서해상에서의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 훈련과 지난해 12월 7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북한 규탄 한·미·일 외교장관회의는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역풍도 만만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을 일방적으로 두둔했는가 하면, ‘화평사명(和平使命)’이라는 중·러 연례 공동 군사훈련을 금년도에는 북한과 접해 있는 중·러 변경 지역에서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MB정부의 ‘편 가르기 외교’가 한·미·일 남방 3각축과 중·러·북 북방 3각축의 신냉전 구도를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여기에 MB 외교의 패러독스가 있다. 강력한 외교력으로 애쓰긴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손해 보는 외교’ ‘거꾸로 가는 외교’뿐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큰 그림 없는 즉흥적, 임기응변식 상황 관리 외교가 문제다. 박왕자 사건, 미사일 시험발사, 2차 핵실험, 대청해전, 천안함 폭침, 북의 우라늄 농축, 그리고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한 반사적 응징외교로 일관하다 보니 체계적이고도 중장기적 외교안보 전략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연히 전략적 불확실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대선공약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과거 정부 정책에 대한 맹목적 거부 또한 악재로 작용했다. ‘비핵·개방 3000’이라는 비현실적 공약에 대한 집착이 대북 및 대외 정책운용에 커다란 족쇄가 되고 만 것이다. “지킬 수 없는 선거공약의 남발은 경미한 죄악이지만, 선거 후 이를 무리해 실행하려는 것은 치명적 죄악”이라는 토머스 폴리(Thomas S. Foley) 전 미국 하원의장의 경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07년의 10·4 정상선언과 45개 남북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도 패착이다. 취사선택해 남북관계의 명맥을 유지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북에 대한 정보 실패도 한몫했다. 북한 급변사태와 조기 붕괴론에 경도된 나머지 북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북의 의도와 의지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편견·선입견·아집, 그리고 안이한 기대와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 어리석은 기다림의 정책이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지형의 판을 깨고 있다.

 돌파구는 있는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이 대통령 스스로가 풀어야 한다. 우선 6자회담이 재개되어야 한다. 내년 서울에서 개최 예정인 ‘핵 안보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도 6자회담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에 구체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선행 또는 병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미 관계 개선과 관련된 우리의 대미 영향력 행사도 적절히 활용돼야 한다. 이는 한·중 관계 개선, 더 나아가서는 북·중 관계의 밀착과 신냉전 구도의 대두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 시점에 이런 선순환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지도자는 이 대통령밖에 없다. 새해 아침에 이러한 지혜와 지도력, 그리고 결단을 기대해 본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약력:연세대 철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정치학 석·박사,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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