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머물던 장징궈 “내 조국은 소련” 어머니에게 편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9호 29면

1935년 여름 신혼여행을 겸해 흑해 연안에서 피서를 즐기는 장징궈 부부, 같은 해 겨울 장남 샤오원(孝文)이 태어났다. 김명호 제공

장징궈가 소련 공산당에 제출한 입당신청서 원본이 최근 발견됐다. “나의 아버지 장제스는 중국혁명의 반역자다. 현재 중국에서 자행되는 흑색공포의 두목이기도 하다. 1927년 나는 그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적으로 대하겠다는 성명을 낸 적이 있다. 그 후로 장제스와 연락을 하거나 인연이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장제스와 조우하게 된다면 공산당원의 입장에서 그와 그의 추종자들을 대하겠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88>

1935년 초 중공의 코민테른 대표 왕밍(王明)이 장징궈를 모스크바로 초청했다. “네가 소련 측에 체포되었다는 소문이 중국에 파다하다. 고향에 있는 모친에게 안정된 직장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는 편지를 한 통 써라.” 두 사람은 ‘모스크바 중산대학’ 동기였다.

1936년 1월 레닌그라드판 프라우다지에 소련 공산당 후보당원 장징궈가 중국의 모친에게 보내는 편지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중국 중앙홍군이 창군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다. 장징궈는 장제스와 쑹메이링이 전국적으로 펼치던 신생활운동과 홍군에 대한 포위 섬멸작전을 무자비할 정도로 비판했다. “어머니의 전 남편은 야만적인 방법으로 수십만의 형제와 동포들을 도살했습니다. 중국인의 적이며 당신 아들의 적입니다. 듣자 하니 장제스는 효와 예의와 염치를 선전한다고 합니다. 항상 이런 수법으로 인민들을 속이고 우롱했습니다.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2층에서 집어 던지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할머니에게 야단맞자 버릇없이 대든 사람이 누구입니까?”

장징궈는 장제스의 유일한 친 혈육이었다. 12년 만에 만난 장제스와 장징궈 부자(1937년 4월 후베이성 한커우).

이어서 풍전등화나 다름없는 중국 홍군의 장정과 소비에트 정권을 찬양했다. “저는 군벌의 아들에서 한 사람의 공산당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장제스는 다섯 차례에 걸쳐 중국의 소비에트정권을 소멸시키려 했지만 홍군은 중국인민의 힘을 상징합니다.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과 죄악의 근원은 장제스입니다. 저의 조국은 소련입니다. 어머니가 중국을 떠날 수만 있다면 계신 곳 어디라도 제가 달려 가겠습니다.” 뉴욕 타임스도 프라우다에 실렸던 내용을 그대로 전재했다.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에게서도 듣기 힘든 비난과 욕설을 아들에게서 들은 장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몰락한 소금장수의 유복자로 태어나 41세에 전 중국을 통일한 사람다운 일기를 남겼다. “역시 이 녀석은 살아 있었다. 그간 잠을 설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조상들에게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모골이 송연했다.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슬플 뿐이다.”

1936년 스탈린의 숙청이 시작됐다. 반혁명분자 장제스의 아들이며 한때 트로츠키 분자로 몰렸던 장징궈도 무사할 리 없었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공산당 후보당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수입원이 끊어진 장징궈는 부인이 벌어오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비밀경찰의 감시가 그치지 않았다.
12월 12일 장제스의 후계자였던 장쉐량이 장제스를 감금하는 사건이 시안에서 발생했다. 소식을 보고받은 스탈린은 긴장했다.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장제스가 죽기라도 한다면 중국은 내전에 휩싸일 것이 분명했다. 중국이 일본과 전면전에 돌입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소·만 국경을 넘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듬해 3월 시안사변이 해결되자 소련공산당은 중앙정치국회의에서 “소련에 12년간 거주해온 장징궈의 귀국과 중국 국민정부에 5000만 루불을 지원할 것”을 의결했다.
스탈린은 장징궈를 모스크바로 불렀다. “소련에 12년을 있었지만 너는 중국인이다. 중국이 일본과 전면전을 준비 중이다. 귀국해서 국가와 민족의 해방을 위해 분투해라.”

장징궈는 난감했다. 마오쩌둥은 본적이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스탈린이나 아버지 장제스는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사람들인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장징궈는 모스크바 주재 중국대사관을 노크했다. 중국을 떠난 지 12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든 원인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