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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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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모든 일은 ‘웃자고 한 일’이었다. 국회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지만 그 또한 일상에 만연한 ‘웃음의 코드’를 가져와 젊은 사람들과 한번 웃어보자고 했던 말일 거다. 그가 했던 말들… 많이 들어보고 써본 말들이어서 움찔한 사람들 많았을 듯하다. 그런데 그걸 글로 옮겨 놓고, 그의 사회적 지위를 덧대어 생각해 보니 완전히 잘못된 방식의 웃음이었음이 훤히 보였던 거다. 한번 ‘웃자고’ 던진 그 유머의 수준이 지나치게 저급해서 같이 웃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머 감각이 연애의 경쟁력 중 첫손에 꼽히고, ‘펀(fun) 경영’이 주목 받고, 감성적 리더의 자질로 유머가 첫손에 꼽히는 세상이다. 어떤 딱딱한 자리에서도 한번 웃자고 하는 유머의 가치가 인정받는 시대다. 문제는 어떤 유머냐다.

유머의 핵심은 기대의 배반이 가져오는 부조화와 과장에 있다. 기존의 통념과 권위를 무너뜨리고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공략해서 사고의 틀을 깨는 반전이 있어야 하고, 현실의 모습에서 디테일을 잘 잡아 그걸 과장해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유머 감각을 키우려면 정치적·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세밀하게 타인과 현실의 특징을 관찰하는 예리한 시선을 키워야 한다.

테크닉은 똑같지만 유머에도 좋은 유머와 나쁜 유머가 있다. 좋은 유머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친밀감을 줘 행복한 일체감을 느끼게 하지만 나쁜 유머는 상대를 깎아내려 고통과 거리감을 준다. 거대한 권위나 강자에 대한 패러디, 상대의 잘못을 감싸는 배려 있는 유머,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유머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스 브레이커(ice breaker)’이지만 반여성적·반남성적 빈정거림이나 신체 특성에 대한 비웃음은 ‘아이스 메이커(ice maker)’가 될 뿐이다. 위대한 코미디언들이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친구를 ‘돼지’라고 놀리거나 여성을 조롱하는 것은 ‘내가 너보다 위에 있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반영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유머일 뿐이다. 상상력의 결핍이다.

유머 감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눈을 떴으니 이제 유머의 수준을 높이는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영어나 한자 급수를 따듯 유머 급수시험을 만들어 경쟁이라도 시키면 어떨까. 잘못된 유머는 일류 대학과 일류 직업의 창창한 미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성공하려면 제대로 된 유머를 써야 한다는 걸 이번 일로 모두가 깨달았을 테니 말이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