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캐스팅 "카지노를 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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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만약 당신이 감독이라면 영화의 성공을 위해 어떤 배우들을 욕심낼 것인가. 영화 내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가정할 때 여성 관객의 눈길을 붙들 섹시한 터프 가이나 우수 어린 눈빛의 반항아가 0순위다.

지적인 풍모를 갖춘 배우나 부드러움 속에 카리스마를 감추고 있는 배우도 빠져선 곤란하다. 여기에 '만인의 연인'이라는 칭호가 붙은 여배우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꿈 같은 소리가 아니라 이 모두를 한 자리에 모은 이가 있으니 '오션스 일레븐'의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다.

올해 서른아홉살인 소더버그는 지난해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에 '트래픽'과 '에린 브로코비치' 두 작품을 동시에 후보로 올려 결국 감독상('트래픽')을 거머쥐었다.

1989년 칸 영화제에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로 황금 종려상을 받으며 눈부시게 등장한 지 10여년 만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감독 중 한명이 된 것이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그가 소집령을 내린 배우들의 명단은 이렇다. 조지 클루니·브래드 피트·줄리아 로버츠·맷 데이먼·앤디 가르시아. 이들이 기꺼이 각자의 출연료를 깎아가면서 만든 이 '별들의 전쟁'은 지난해 말 미국 개봉 당시 3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가볍게 밀어냈다.

감독과 배우들의 '근수'에 비해 플롯은 단순하다. 소더버그는 플롯을 풀어가는 방법에서 결코 심각하게 폼을 잡거나 찡그리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건달 열한 명이 작당해 각종 속임수를 써서 라스베이거스의 초대형 카지노를 턴다는 이야기다. 교도소에서 출감한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은 전처 테스(줄리아 로버츠)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카지노 재벌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의 품에 안길 참이다. 이런?.

대니는 테리가 소유한 카지노 세곳을 털어 부와 사랑을 한꺼번에 낚기로 하고 팀을 구성한다. 참모격인 러스티(브래드 피트), 가업을 이은 소매치기 라이너스(맷 데이먼), 폭탄 제조 전문가 배셔(돈 치들) 등이다. 이름하여 '오션스 일레븐'이다.

이들은 "완벽한 패로 싹쓸이해야 한다"는 대니의 신조에 따라 준비, 또 준비를 거듭한 끝에 카지노 내에서 권투 경기가 열리는 날, 다시 말해 카지노에 가장 많은 돈이 모이는 날 '거사'를 한다.

'오션스 일레븐'은 포마드를 발라 빗어 넘긴 머리칼처럼 매끈한 영화다. 빠른 화면 진행, 경쾌한 음악, 결과와 원인을 역순으로 구성하는 식의 편집 등으로 별다른 폭력 장면 없이도 속도감을 유지한다.

특히 후반 40분부터는 이들이 철옹성 같은 금고를 터는 장면과 권투 경기가 교차 편집되면서 영화 속 공기는 더욱 팽팽해진다. 클루니와 피트의 능청맞은 대화는 마치 탁구공을 주고 받듯 이어지며 조화를 이룬다.

여기까지가 '오션스 일레븐'에서 관객이 얻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이 영화는 원래 1960년 프랭크 시내트라 주연으로 만들어졌던 작품이다. 미국 언론들은 범작에 지나지 않았던 '구닥다리'를 감각적인 스타일로 재창조한 소더버그에게 그리 인색하지 않은 눈치다.

하지만 소더버그의 전작들이 발하던 한 줄기 성찰의 빛을 아쉬워할 관객들에겐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다. 3월 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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