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코드'인사 위해 대법관 늘리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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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오는 27일 임기 종료를 앞두고 대법원 구성.기능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법원 측은 전국 5개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해 가벼운 사건의 3심을 맡기자는 의견인 반면 재야 법조계에선 대법관 수를 현재의 14명에서 2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고법 상고부 설치든, 대법관 증원이든 그 배경은 현재의 대법관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대법원은 해마다 2만건이 넘는 사건을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이 심사하고 있다. 대법관 한 사람이 처리하는 사건이 월 130건가량으로 일본의 5배, 독일과 미국의 20~30배에 이르는 실정이다. 이래서는 날로 다양화.전문화하고 있는 각종 분쟁에 대해 심도 있는 심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한변협을 비롯한 재야 법조계는 고법에 상고부를 설치할 경우 상고부가 산재해 판결의 통일성을 기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관을 증원한다 해도 사실상 전원합의체 구성이 어려워 법령 해석에 통일을 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재야 법조계가 대법관 증원을 주장하는 것은 대법원 물갈이를 염두에 둔 것이란 시각이 많다. 보수 성향인 대법원을 바꾸기 위해 대법관 수를 늘리려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을 코드에 맞는 인사들로 채우기 위해 그 수를 늘리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런 만큼 대법원이 어느 한쪽 성향의 인물들로만 채워져선 안 된다. 더구나 대법관 14명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 임기가 끝나는 대법관이 13명에 이른다. 이미 2명이 교체됐고 내년엔 최종영 대법원장을 비롯해 6명이 법복을 벗게 된다. 그런데도 대법관 수를 늘려 특정 성향의 인물들로 채우려 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을 저해하는 결과가 될 뿐이다. 대법원 구성.기능 개편의 목표는 '코드 인물'이 아닌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효율성에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