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혜암 종정 입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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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계종 10대 종정 혜암(慧菴.사진)스님이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전 10시23분 해인사 부속 암자인 원당암 미소굴(微笑屈)에서 입적했다.

세속의 나이로는 82세, 법랍(法臘.출가 이후 불교식 나이)은 55세.

큰스님은 '나의 몸은 본래 없는 것이요, 마음 또한 머물 바 없도다. 무쇠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돌사자는 소리 높여 부르짖도다'(我身本非有, 心亦無所住. 鐵牛含月走, 石獅大哮吼)라는 열반송(涅槃頌.임종을 맞아 부르는 노래)을 남기고 떠났다.

종정은 '깨달음을 위한 고행(苦行)'을 강조해온 대표적인 선승(禪僧). 평생에 걸친 '일일일식(一日一食.하루 한끼 먹기) 장좌불와(長坐不臥.잠자리에 눕지 않는 수행)'로 유명하다.

스님은 해방 직전인 1945년 일본으로 유학갔다가 조사(祖師.역대 고승)들의 어록(語錄)을 담은 글을 읽고 출가를 결심, 귀국한 뒤 46년 해인사 인곡(麟谷)스님을 찾아 머리를 깎았다.

스님이 본격적인 고행의 길로 들어선 것은 47년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젊은 혜암 스님은 당시 한국 불교의 중흥을 모색하던 중진 성철(性徹.전 종정)스님을 만나 '결사(結社.결의를 맺고 특별한 수행에 들어가는 일)'를 제의받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철저한 수행'을 다짐하고는 곧장 경북 문경 봉암사로 들어갔다.

당시 봉암사 결사에는 청담(淸潭).향곡(香谷).자운(慈雲)스님 등 해방 후 불교계를 이끌었던 큰스님들이 동참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이후 한국 불교계의 근간을 이룬다. 혜암 스님은 그 줄기의 막내인 셈이다.

스님은 이후 오대산으로 들어가 물과 잣나무 가루만 먹으면서 참선에 전념하는 등 엄격한 수행을 해왔다.

행적으로 보자면 혜암 스님은 선배격인 성철 스님의 뒤를 밟아왔다고 할 수 있다. 전국 선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다가 79년부터는 줄곧 해인사 선방에서 후학들을 지도해왔다.

93년 성철 스님이 입적하자 뒤를 이어 해인총림 방장에 추대됐다. 이어 94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99년 5월 종정의 자리에 올랐다.

깡마르고 눈빛이 형형한 수도승의 풍모를 지녀온 스님이었지만 팔순을 넘기면서 건강이 좋지 않아 원당암 위쪽 작은 토담집(미소굴)에서 칩거해왔다.

다비식(불교식 화장)은 오는 6일 해인사에서 종단장으로 거행된다. 02-732-9342.

오병상.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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