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카우룽’ 홍콩 새 금융 중심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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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웨스트 카우룽(九龍)에 들어선 국제상업센터 전경.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금융사들이 속속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있다. [선홍카이 그룹 홈페이지]

25일 빅토리아만을 사이에 두고 홍콩섬의 금융중심가 센트럴 지역을 마주 보는 웨스트 카우룽의 국제상업센터(ICC) 앞. 홍콩 법인 또는 지점을 ICC로 이전하는 금융사들의 이삿짐 차량이 분주히 들락거리고 있다. 로비가 있는 8층에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전용 출입구가 설치됐다. 지난해 말 정식 개장도 하기 전에 입주한 모건스탠리는 16개 층을 쓸어담았다. 홍콩 사업 부문들을 모아 ICC로 옮긴 것이다.

홍콩의 웨스트 카우룽(九龍)이 국제금융의 새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폭발적인 경제성장세를 타고 중국의 돈이 홍콩으로 밀려들면서 지리적으로 중국에 가까운 카우룽 지역이 금융 전진기지로 부상한 것이다. 웨스트 카우룽 시대를 이끄는 랜드마크는 글로벌 금융사들이 속속 입주하고 있는 ICC다.

세계 4위의 초고층 빌딩인 ICC는 높이가 490m, 사무실 면적이 23만㎡에 달한다. 홍콩 최대 부동산개발업체인 선홍카이(新鴻基)그룹이 개발했다.

센트럴 시대를 마감하고 웨스트 카우룽으로 옮기는 글로벌 투자은행은 모건스탠리뿐이 아니다. 올 하반기엔 도이체방크가 13개 층을 임대해 입주할 예정이다. 크레디트스위스, 인도 최대 은행인 ICICI, 호주의 ANZ 등도 줄줄이 입주했다. 중국 비즈니스를 염두에 둔 전진배치인 셈이다.

홍콩의 부동산업계에선 1980년대 이후 센트럴 지역에 금융사들이 몰리면서 발생한 만성적인 사무공간 부족이 ICC 개장과 함께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널찍한 공간뿐 아니라 센트럴에 비해 3분의 1도 안 되는 임대료 때문에 여러 금융사가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도 발 빠르게 카우룽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ICC 17층에 둥지를 튼 하나은행 홍콩지점은 26일 이전식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하나은행은 하나대투증권 홍콩지점과 사무실을 합쳐 은행·증권 업무의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김열홍 지점장은 “카우룽은 중국 대륙의 관문으로 성장하는 곳”이라며 “홍콩과 중국 간 돈의 흐름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새로운 금융중심지로 ICC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고 말했다.

ICC 인근에는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와 홍콩을 잇는 고속철의 역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2015년 개통될 이 고속철은 광저우와 홍콩을 48분에 주파한다. 중국과 홍콩이 일일 업무생활권으로 더 긴밀히 묶이게 되는 것이다.

앞서 24일 ICC 77층으로 이전한 신한은행 홍콩지점(지점장 권오균)도 소매금융을 강화한다는 목표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18일엔 국내 본사와 홍콩 현지 직원 등 140여 명이 나와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투자은행(IB)인 신한아시아(법인장 박인철)도 은행과 같은 공간에 둥지를 텄다.

유럽계 은행의 자산관리 담당자는 “홍콩에 투자하는 중국인들은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홍콩섬에 밀려 구도심으로 전락한 카우룽 일대가 향후 중국과의 경제교류에 대한 기대감을 업고 금융·상업의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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