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이창호-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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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자포자기의 李3단, 投石

제9보 (153~188)=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

이 어이없는 패착으로 종국이 일찍 찾아왔다. 흑▲는 A의 삶을 강요한 것이지만 자포자기적인 느낌이 짙게 풍긴다. 백이 이 곳을 후수로 넘어갈 리도 없으므로 먼저 159에 지켜두고 나중에 흑▲에 두면 언제나 선수다.

그런데 내 쪽의 치명적인 약점을 놔둔 채 굳이 이곳을 먼저 둔 것은 '괴로우니 제발 내 목을 쳐달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이다.

이세돌3단이 왜 이토록 국면을 비관했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154. 李9단의 이 한수가 흑을 함정으로 몰아넣고 있다. 李3단은 155를 선수한 뒤 석점을 잇는다. 흑▲에 둔 이상 석점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운명을 뻔히 알면서도 李3단은 함정 속으로 걸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 뒤는 외길 수순이자 일사천리였다. 154로 공배를 메워 둔 탓에 흑의 포위망은 새끼줄처럼 끊어져 나갔다. B로 잡는 수가 생긴 데 이어 180의 강수마저 성립됐다. 李3단이 183, 185로 저돌했으나 188로 몬 수가 최후의 결정타.

이 수를 두지 않고 그냥 '참고도'백1로 씌우면 흑2의 먹여침에 의해 연단수로 몰린다(5-이음).

실전은 그러나 흑이 한 점을 이으면 백C로 흑이 다 잡힌다. 흑D로 먹여칠 수 없기 때문이다. 李3단은 여기서 돌을 던졌다. 국후의 복기에서도 그는 흑▲를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 무렵엔 이미 승부를 돌이킬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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