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해인사 佛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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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목어(木魚)를 두드리다/졸음에 겨워//고오운 상좌 아이도/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웃으시는데/서역 만리(西域 萬里)길//눈부신 노을 아래/모란이 진다. "

산사(山寺) 찾아가는 길 나도 꽃이라며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밤꽃 비릿한 내음을 몇달 가물다 단비 맞은 땅이며 쑥이며 초목들이 훅, 훅 내뿜는 생명의 진한 향기가 눌러앉힌다. 조지훈 시인의 시 '고사(古寺)1' 에서와 같이 목탁을 두드리다 동자승도 잠든, 고요하면서도 넉넉한 산사를 찾으려 했으나 웬걸, 경내 가득 스피커 염불 소리에 굴착기 땅 파는 소리다. 기와 불사, 무슨 불사라며 신도와 관람객들의 시주 모금에 온 절이 각박하다.

불사(佛事)란 원래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며, 불가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말한다. 지금은 주로 사찰이나 탑.불상 등을 중건하거나 세우는 일에 이 말이 쓰이고 있다. 초기 중국 불교의 열렬한 신도로 대형 불사를 일으켰던 양무제가 "수 많은 절을 지어온 나에게 어떤 공덕이 있는가" 고 물었을 때 인도에서 막 건너온 달마는 "속세에서나 필요한 덧없는 행위로 전혀 공덕이 될 게 없다" 고 답했다.

그러나 우리 불교계에서는 '속세에서나 필요한 덧없는' 불사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동양 최대도 모자라 세계 최대 규모를 내세우는 불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대형으로 불사를 벌일수록 신도들도 많이 찾고 능력 있는 승려로 인정받는 풍토에 불교계 내.외부에서 많은 비판이 제기돼 왔다. 신도들의 시주에 의존한 속세적 물량 위주의 불사는 기복신앙만 부추기니 이제 문화적.환경 친화적 불사로 돌아가 중생들을 교화하자는 것이다.

해인사가 지난 4일 기공한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 대불 조성을 둘러싸고 불교계가 분란에 휩싸이고 있다. 실상사 한 승려가 이 불사에 대해 "해인사를 세속화의 중심으로 타락시키는 행위" 라고 글을 통해 비판하자 해인사 승려 30여명이 찾아가 기물을 부수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해인사 승려들의 이러한 행동에 또다른 승려는 "양아치 수준도 못된다" 고 비난하는 등 불사를 놓고 험악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부처님은 『중아함경』에서 세속적 욕망을 이렇게 경계했다. "너희가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모양은 횃불을 들고 바람을 향해 달리는 사람과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속히 버리지 않으면 불꽃은 곧 네 전신을 불사르고 말 것이다. "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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