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칼럼] 당권 · 대권을 분리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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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집권 민주당의 친위 계보인 동교동계에서 '당권-대권 분리론' 을 제기해 당내에 파문이 일고 있다. 내년 초 정기 전당대회에서 당의 지도체제를 정비하고 따로 내년 후반에 대통령후보 지명대회를 열어 대통령후보를 공천하자는 것이다.

*** 네차례 모두 대선서 좌절

우리 헌정사에는 유력 정당의 대통령 후보와 당권이 분리된 가운데 대통령선거를 치른 전례가 네 차례 있었다. 야당에서 세번, 여당이 한번이었다. 우연히도 네 차례 모두 그 후보는 대선에서 이기지 못했다. 후보가 당권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이 패배의 직접 원인이라곤 볼 수 없다. 오히려 승리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가 대권 - 당권의 분리로 나타났던 것 같다.

자유당정권말 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민주당은 당내 신.구파간 대립이 극심했다. 1959년 11월 하순 정.부통령 후보와 당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전당대회에선 대통령후보로 구파의 조병옥(趙炳玉)박사가 지명됐다.

그러나 당의 대표최고위원으로는 후보 지명대회에서 3표 차로 패배한 장면(張勉)부통령 후보가 이겼다. 선거 직전 趙후보의 급서(急逝)와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로 60년 대선에선 형식상 패배했으나 결국 4.19를 거쳐 민주당의 장면 정권 출범으로 이어졌다.

67년 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야인사들의 중재로 야당인 민중.신한당이 신민당으로 통합되면서 신한당의 윤보선(尹潽善)대통령후보는 통합야당의 대통령후보를, 민중당의 유진오(兪鎭午)대통령후보는 당 대표를 맡는 타협이 이뤄졌다.

절치부심하던 尹전대통령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을 상대로 권토중래의 기회를 잡았고, 대선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던 민중당 실세들은 통합신당의 당권 장악에 만족했다. 선거결과는 윤보선 후보의 참패였다.

69년 공화당 정권이 3선개헌을 강행하고 유진오 신민당 당수의 건강이 악화되자 김영삼(金泳三)씨는 야당에서 '40대 기수론' 을 들고 나왔다. 대권 유망주로 김영삼.김대중(金大中).이철승(李哲承)씨 등 젊은층이 부각되면서 야당 내에 당권-대권 분리론이 대세를 이뤄갔다.

그에 따라 70년 1월 전당대회에서 유진산(柳珍山)씨가 당수가 되고, 그해 9월 29일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2차 투표 끝에 김대중씨가 柳당수의 지명을 받은 김영삼씨를 누르고 후보로 뽑혔다.

그후 야당의 선거운동은 金후보를 중심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됐으나 당의 협력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金후보는 선전했지만 전면적인 관권선거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선과정에서 후보와 당권파간의 원만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던 야당은 대선후 柳당수의 지역구 포기와 전국구 공천 파동을 계기로 대립, 분열의 길로 가게 된다.

대통령직선제가 부활된 87년 이후 야당세력은 YS, DJ당으로 갈라섰기 때문에 두 사람이 대권 후보로 나서는 한 그 당내에서 당권-대권 분리론이 나올 여지는 없었다. YS와 DJ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당이었기 때문이다.

단임 대통령제로 치른 지난 세 차례 대선과정에서 여당은 당권과 관계없이 대통령후보를 지명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당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선거에 집중하기 위해 대통령은 당총재직을 후보에게 물려줬다. 대권 승리를 위해 대권과 당권이 사후적으로 통합됐던 것이다.

*** 패배주의 오해받을 수도

97년 대선 막바지에 신한국당이 '꼬마 민주당' 을 끌어들여 한나라당을 만들면서 신한국당의 이회창(李會昌)씨가 신당의 후보로 나서는 대신 민주당의 조순(趙淳)씨가 총재를 맡아 대권-당권을 분리한 것이 여권에선 유일한 예외다. 역시 李후보도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번 민주당의 대권-당권 분리론은 대선에 임해서도 당권과 대권을 통합하지 않고 협력체제로 나간다는 뜻 같다. 누가 후보가 되든 당권은 친위계보인 동교동계가 계속 장악하겠다는 것으로 당내에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정치문화에서 후보가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당권-대권 분리론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날로 당선자에게 모든 힘과 세가 몰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당권-대권 분리론은 선거 전 대통령의 레임덕 완화와 선거 패배 후 당 장악을 겨냥한 포석이란 얘기가 된다.

국정의 책임을 진 집권여당이라면 당권-대권 분리론에 깔려 있는 이런 패배주의적 함축을 깊이 헤아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성병욱 <본사고문 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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