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와이드] 도심봄길 누비는 '테이크아웃' 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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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초등학생 때 어머니의 불호령. "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사먹으면 안돼!" 1970~80년대 데이트족의 한마디. "햄버거를 어떻게 들고 다니면서 먹냐. 창피하게…. " 2001년 4월 점심식사를 마친 20대 회사원들의 외침. "각자 디저트 사가지고 10분 후에 여기로-. " 사무실로 돌아가는 이들 손에 들려진 아이스크림.고구마 파이.카페라테…. 실용적인 '테이크아웃 푸드(가지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포장 음식)' 가 부박(浮薄)한 인스턴트 문화라는 일부 지적 속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테이크아웃 원조는 호도과자?

"테이크아웃?

그게 뭔데. 들고 다니며 먹는 거라고. 그럼 우리집 호떡도 그거지. 먹기 편하고 깔끔하니까 손님들도 좋아하데…. "

지난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거리. 유명 의류 할인매장이 즐비한 이 거리에서 손은자(51.여.서울 광진구 구의동)씨가 부쳐내는 호떡은 인기 만점이다. 맛도 맛이지만 어른 손바닥만한 호떡을 종이컵에 쏙 담아 주는 게 특이하기 때문인지 손님이 붐빈다.

3년째 가판대 장사를 해온 손씨가 1년 전부터 시작한 '종이컵 포장 판매' 에는 나름대로 고객 행동분석에 따른 마케팅 전략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 사달라는데도 뜨거운 데다 설탕물이 흘러 옷에 묻을까봐 엄마들이 안 사주더라고. 그래서 편리하게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지요. "

외국 관광객에게도 손씨의 호떡은 신기한 한국 음식이다. 홍콩.일본 등 단체 관광객들은 서툰 외국어로 '5백원' 을 외치는 손씨로부터 '테이크아웃 호떡' 을 받아들고 이 거리에서 쇼핑을 즐긴다.

거리로 나온 먹거리가 도시인의 새로운 식생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식사는 식당이나 레스토랑에서, 차.커피는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즐겨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이미 '쉰 세대' . 흔히 떠올리는 1회용 포장 커피나 햄버거 등 패스트 푸드를 넘어 테이크아웃은 이 시대의 유행이 됐다.

이런 문화를 불편해 하는 중장년층도 실제로는 테이크 아웃을 즐기며 자랐다.

유원지 입구에서 팔던 번데기 한봉지나 냉차 한컵, 밀리는 도로에서 1천원에 파는 호도과자를 사먹은 적이 있다면 원조(元祖) 테이크아웃을 맛본 셈이다. 음식의 가지수가 늘고 좀더 세련되고 편리한 용기에 담겨 나오는 게 예전과 다를 뿐이다.

*** 싸고 간편하고 시간도 절약

지난 4일 오후 1시쯤 서울 중구 서소문로 입구에 있는 작은 커피전문점. 점심 식사를 막 끝낸 남녀 직장인들이 가게 앞 보도에 줄을 섰다. 카페라테.아이스 라테.카페 모카…. 주문도 가지가지다. 가격은 1천7백~2천원. 여느 커피숍의 절반 수준이다.

면적이 다섯평도 안되는 매장이지만 하루 팔리는 커피가 3백잔이 넘는다.

"싼 데다 양이 많고 종류도 다양하잖아요. 빠듯한 점심시간에 사무실에까지 가져가 마실 수 있어서 특히 좋아요. "

인근 회사에 다니는 이향미(27.여)씨는 거의 매일 이 곳을 찾는다. 최근에는 동료들과 도시락이나 햄버거를 사들고 덕수궁에서 점심을 먹는 일도 잦아졌다.

오빠와 함께 지난해 4월부터 가게를 운영하는 이지아(29)씨는 "테이크아웃을 즐기는 손님이 갈수록 늘어 지난해보다 매상이 두배 정도로 늘었다" 고 귀띔했다. 이씨는 창업하는데 점포 임대료를 제외하고 5천만원 가량 들었다.

국내 테이크아웃 커피전문 체인점은 로즈버드.홀리스.스타벅스.에스프레소 등 10여개에 이른다. 아직은 매장 내 자리에 앉아서 마시는 곳이 많다. 이 경우 가지고 나갈 때보다 5백~8백원을 더 받는다.

업계에 따르면 두세 평의 부스나 숍인숍 형태로 점포를 열 수 있는 체인점은 2천만원이면 창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인지도가 높은 외국 브랜드는 1억원 넘게 든다. 장소에 따라 점포 임대료만 1억원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

*** 커피, 햄버거에서 파스타까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서브웨이' 샌드위치 등 테이크아웃 품목이 날로 다양해지는 가운데 궁중요리나 퓨전 음식까지 가지고 다니며 먹는 요리로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 옆길에 문을 연 '비손' 은 퓨전 프렌치 레스토랑을 본점으로 둔 테이크 아웃 전문점이다.

열평 남짓한 매장에서 게살 고로케.감자 수프.닭 토티야 등 동.서양 요리를 즉석 조리해 판다.

하얏트호텔과 여러나라 외교관 관사가 주변에 있어 외국인 손님이 많지만 최근에는 남산 산책길이나 귀가길에 들르는 내국인 단골 손님도 늘었다.

이 곳에서는 본점에서 판매되는 모든 요리를 그대로 조리해 30~40% 싼 가격에 제공한다.

신세계 강남점 지하 1층에 있는 즉석식품 전문매장 '델리 존' 에서는 한식.양식.중식 등 색다른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다. 구절판.월과채.유자향 등 궁중요리가 이채롭다. 전문 양식 요리사가 만들어 주는 샐러드와 파스타는 물론 딤섬.탕수육 등 중국음식도 테이크아웃용으로 판매한다. 이 곳에서 팔리는 테이크아웃 음식의 주고객이 주부라는 점도 특이하다.

글=김성탁기자

사진=김성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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