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MB - 박근혜 조건 없이 만나 소통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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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명박 대통령이 설 연휴 전날인 어제 “싸우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좋지 않다.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신년을 맞자”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강도(强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골 깊은 여당 내의 세종시 갈등에 대해서도 그는 “활발하게 토론해도 같은 식구라는 범주 안에서 유지됐으면 한다”고 화합을 주문했다. 특히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을 건의하자 이 대통령은 “편리한 시기에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16일 이후 5개월 동안 끊어져 있던 박 전 대표와의 회동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모두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직접 만남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싶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우리 정치의 리더이자 세종시 문제를 풀어낼 실질적 주역이다. 수정안의 친이(親李)와 원안 고수의 친박(親朴)계로 나뉘어 으르렁거려온 내분 사태를 진정시키고 국정을 주도하는 정상적 여당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최대 주주들 간의 대화와 소통은 필수적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단독으로 만난 것은 2008년 1월 이후 네 차례뿐이다. 대선 후보 경선 때의 치열한 경쟁 탓에 모두 감정적 앙금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지만 소통 자체가 민망할 만큼 부족했다. 그나마 만날 때마다 해석의 엇박자가 나고 뒤탈이 적잖았다. “두 사람이 상극(相剋)인 때문”이란 사주풀이까지 등장하고, “화성 남자, 금성 여자” “꼬리 세우는 걸 정반대로 해석하는 개와 고양이를 보는 듯하다”란 냉소적 비유까지 나왔다. 친이계에선 “뒷다리만 잡는다. 경선 승복한 게 맞느냐”고 볼멘소리를 해왔고, 친박계는 “국정의 동반자라더니 진정성과 신뢰를 눈곱만큼도 못 느끼겠다”고 푸념했다.

물론 두 사람의 만남 자체로 당장 세종시 문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당내 다수인 친이계에선 ‘당론(黨論) 표결’로 수정안 관철을 추진 중이고, 친박계는 “‘원안+α’ 외의 꼼수엔 토론 여지가 없다”며 날선 대치를 계속해 왔다. ‘효율’과 ‘신뢰’라는 가치의 대결까지 얽혀 쾌도난마(快刀亂麻)식 해결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얼굴을 맞대 서로의 입장을 직접 듣고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 자체가 바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서로의 입장과 고충, 대안을 가감없이 나누다 보면 충분히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국정 운영의 엔진 격인 두 지도자가 만나는 모습만으로도 팍팍한 삶 속의 국민에겐 큰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적대감 역시 적잖이 누그러들 것이다.

비단 세종시뿐 아니다. 실업과 청년층 일자리, 유럽발(發) 경제위기, G20 준비, 4대 강 사업, 남북관계 등 국정 과제가 산더미다. 25일은 정권 출범 3년차로 접어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참에 두 지도자가 만나 국정 전반을 점검해보고 새로운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는 형식이라면 상호 윈-윈과 도약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가능한 한 빨리 두 사람의 만남을 보고 싶다. 조건과 고정관념, 계산 등등은 밖에 남겨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