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금융 3제' 이렇게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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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가 지난 몇 개월간 한국 금융이 안고 있는 산적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 세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예금보험제도(예금부분보장제)부터 살펴보자. 재경부는 장관이 바뀐 후 무려 70여일간 서베이를 거듭한 끝에 한 사람이 한 은행에 맡긴 돈 가운데 5천만원까지는 보호하고 그 이상은 예금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종래의 2천만원은 너무 적어보였던지 올리긴 올려야겠는데, 3천만원은 부족하고 7천만원은 너무 커서 종착역을 5천만원으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금보험 한도를 5천만원으로 올리면 구체적으로 무슨 득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별로 없다. 주먹구구식 행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는 부분보험제도만 채택되면 예금주가 우량은행을 골라 예금하게 되므로 불량은행은 저절로 퇴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정보(情報)가 불투명한 우리의 금융시장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우량과 불량을 구분해야 할지 예금자들은 난감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덜 불량한 은행은 있을지언정 아직 우량은행은 없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예금자들은 떠도는 소문에 민감하고, 그만큼 금융시장은 불안하다.

나는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받을 때 약속한 대로 2천만원까지는 전액 보장하되, 그 이상은 90% 내지 95%만 보장해 예금보험기구와 예금자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제도를 주창한 적이 있다(중앙일보 7월 24일 중앙시평). 그러나 이 방식은 관리들에게 너무 복잡하게 보였나 보다.

또한 어떤 이는 이 아이디어가 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2천만원 또는 5천만원만 보장되는 예금보험제도에서 10억원 이상 예금보유자 십수만명의 상당수가 외환자유화를 틈타 외국계 은행으로 예금을 옮긴다면 수십억 또는 그것의 수배에 달하는 규모의 달러가 한국을 떠날 수도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금보험제도는 말 그대로 보험제도일 뿐이다. 우량은행과 불량은행을 구별하는 기능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또한 정부가 불량은행을 퇴출시킬 용기나 있는지 모르겠다.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은행을 묶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보면 정부는 불량은행을 퇴출시킬 의사가 없는 것 같다.

실물기업이든 금융기업이든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퇴출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라는 핵우산 속에서 불량은행을 보호해 주면, 은행을 오늘날처럼 불량하게 만든 사람들의 책임소재가 모호해져 당사자들은 좋을지 몰라도 은행산업의 장래는 계속 어두울 수밖에 없다.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은행들이 지주회사로 묶인다고 경영상태가 좋아질리 만무하다. 불량+불량에서 우량이 나올 수 없듯이, 서로간에 차단벽이 설치된 불량은행들은 대규모 공적자금만 집어삼키는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다.

차라리 그 자금은 우량은행, 아니 덜 불량한 은행에 투입해 우량은행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니면 불량은행 퇴출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쓸 수도 있다.

정부가 '주인찾아주기' 의 명분으로 은행소유한도를 4%에서 10%로 올리려는 시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은행소유 문제는 1998년 가을(한계레신문 10월 29일 '재벌의 은행소유 안된다' )이후 일단락된 듯했다. 그런데 정부는 하는 듯 마는 듯했던 재벌개혁조차 미안했던지 재벌들에 선물을 주려나 보다.

한보와 대우가 주인이 없어서 망했는지, 작금의 현대건설이 주인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또한 재벌들이 소유했던 상호신용금고.종금.보험회사와 증권회사들이 아무런 견제도 없이 모기업과 계열기업에 자금을 제공해 중복 과잉투자를 가능케 하고 급기야는 97년 경제위기를 맞았음을 잊었는지 묻고 싶다.

게다가 주인있는 은행은 주인있는 재벌처럼 경영이 실패했을 때에도 주인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알라고 말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예금보험제도는 공동책임제를 기본 골격으로 해야 하고, 은행도 부실하면 퇴출돼야 한다. 은행소유상한을 풀어주면 안되는 것은 물론이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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