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채화 명맥 이으려 힘쓰는 마지막 화장 황수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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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인두질 하다가 데인 자국, 염색 하느라 얼룩 빠질 날이 없던 손톱 탓에 못난 손을 남볼까 늘 조심했다는 황수로 궁중채화연구소 소장. [일맥문화재단 제공]

인두질 하다가 데인 자국, 염색 하느라 얼룩 빠질 날이 없던 손톱 탓에 못난 손을 남볼까 늘 조심했다는 황수로 궁중채화연구소 소장. [일맥문화재단 제공]
비단으로 만든 꽃에 나비가 날아든다. 밀랍 향을 맡은 벌이 꽃잎에 와 앉는다. 생화가 아닌 인조 꽃인데도 초충(草蟲: 풀과 벌레)이 꼬이는 신묘한 꽃다발이 한국 채화(綵花)다. 비단과 밀랍에 꽃물을 들여 만든 채화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잔치에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공예품이었다. 나라님 명으로 살아있는 꽃을 꺾거나 자르지 못하도록 돼있던 조선왕조 500년 동안 꽃 일을 담당하는 장인인 화장(花匠)이 늘 수십 명씩 궁중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요즘 영화나 TV 사극을 보면 속상해요. 고증을 할 여유가 없는지, 아니면 예산이 모자라는지 출연진의 복식이나 무대세트는 화려한데 정작 꼼꼼해야 할 소품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엉망이네요. 제가 연구생들에게 그러죠. 저거 동대문 시장에서 덜렁 사다가 아무 생각 없이 꽂아놓은 거다.”

명맥이 끊길 지경에 이른 조선 채화를 전승하는 마지막 화장 황수로(76·궁중채화연구소 소장)씨는 입을 열자마자 안타까운 마음부터 털어놨다. 평생 목숨처럼 꽃을 다뤄온 그이로서는 푸대접받는 채화의 현실이 전통이 무너지는 방증처럼 씁쓸하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儀軌: 주요 행사 내용을 기록한 책)를 비롯한 각종 사료를 보면 계절과 의례에 따라 채화의 공예기법과 소재가 다양해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가벼운 세저포에 봉선화와 쪽을 물들이고, 가을이면 금·은사를 엮어 짠 비단과 능단 등에 자초·꼭두서니·연지·치자 물을 들였죠. 겨울이 오면 향기로운 밀랍을 빚어 노루 털에 꽃가루를 묻혀 따듯하면서도 푸근한 꽃을 만들었어요.”

황 소장은 이렇게 아름답고 지혜로운 전통이 사람들에게 잊히는 게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가 최근 2권으로 펴낸 『아름다운 한국 채화(綵華)』(도서출판 노마드북스)는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채화의 종류와 역사를 정리하고 채화제작의 기법을 실제 제작사진과 함께 공개한 노작이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특별기획전에 선보였을 당시 미국 영부인 로라 부시가 거듭 칭찬했던 채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선친이 일군 가업이 염색 일이라 어린 시절부터 천에 물들이는 일을 좋아했어요. 비단을 잘라 풀을 먹여 두드리고 인두질하면서 각종 꽃잎과 뿌리에서 채취한 색을 들이는 일은 도 닦는 업인 셈이죠. 12번씩 물을 들여 자연색보다 더 고운 색이 나올 때, 그 꽃에 나비가 앉을 때 기쁨은 경험 못한 사람은 모르죠.”

박일훈 국립국악원장이 찾아와 가무를 위한 꽃 무대인 ‘지당판’을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황 소장은 “10억원 내놓으시면 해보죠”라고 한마디 했단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일을 외롭게 해온 그다운 배짱이다. 깜짝 놀란 박 원장에게 황 소장은 “1년 말미를 주면 완벽하게 고증 제작해 국악원에 무료기증하겠다”고 선뜻 약속했다.

“화장은 아직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어요. 저밖에 전승자가 없어 오히려 어려운 점이 있네요. 채화가 조선시대 궁중 문화를 집약한 종합예술인 걸 생각하면 이제는 개인보다 국가 차원에서 연구·계승할 때라는 소신입니다.”

황 소장은 27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성북동 삼청각 일화당에서 열릴 출판기념회에서 채화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열어 보이겠다는 계획을 털어놨다. “꽃은 생명의 정점이죠. 꽃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꽃 박물관’을 세워 누구나 꽃 속에 사랑하고 행복한 날을 보는 게 꿈이랍니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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