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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사는 시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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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인사가 참 간편해졌다. 새해 인사를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주고받았다. 대개 새해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는 덕담의 문장들이었지만, 드물게는 포효하는 호랑이를 담아 보내온 이도 있어서 벙싯 웃었다. 윗사람에게 안부 인사를 여쭙는 세문안도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소략히 치렀다. 새해 들어 나를 벙싯 웃게 한 한번의 인사는 택시 기사에게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시인의 삶에 대한 얘기가 오갔는데, 내가 차비를 치르고 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 택시 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젊은 양반도 시 쓰십니까. 좋은 거 하시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인사를 받으면 내 쪽에서도 답례를 드리게 되는데, 어떤 문장의 답장을 드릴까 꽤 고민이 되었다. 고민 끝에 신석정 시인의 시 구절 “내 가슴속에는 하늘로 발돋움한 짙푸른 산이 있다”를 변형해서 “당신의 가슴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있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24세에 출가해 석전 박한영 스님으로부터 ‘대승기신론’을 배웠다는 신석정 시인은 “내 가슴속에 누적된 그 삼라만상은 내 정신세계의 전 재산이요, 이 재산으로 하여금 나는 부절히 발전하고 사유하고 욕망하고, 또 의욕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우리들 삶의 테두리 저 너머를 바라지 않아도 될 정도의 보석 같은 일들이 우리들 가슴속에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사와 답인사에는 야박함이 없어서 좋다. 그 말과 문장과 몸짓에는 인심이 후하다. 정현종 시인이 최근 한 문학잡지에 발표한 신작 시를 보고서도 역시 이런 생각을 했다. ‘인사’라는 짧은 시였다.

“모든 인사는 시이다, / 그것이 / 반갑고 / 정답고 / 맑은 것이라면. // 실은 / 시가 / 세상일들과 / 사물과 / 마음들에 / 인사를 건네는 것이라면 / 모든 시는 인사이다. // 인사 없이는 / 마음이 없고 / 뜻도 정다움도 없듯이 / 시 없이는 / 뜻하는 바 / 아무런 눈짓도 없고 / 맑은 진행도 없다. / 세상일들 / 꽃피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의 문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산문에는 겉치레 인사 혹은 불청객 손님으로부터의 인사를 그럴듯하게 거절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있다. 그는 독특하게도 고양이의 꼬리 같은 물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고양이는 주인이 부를 때 내키면 ‘야옹’하고 반응하여 울지만, 내키는 마음이 없으면 묵묵히 살짝 꼬리의 끝을 흔들어 보인다는 것에 그는 주목했다. 그래서 그에게도 대답의 방법으로 이 고양이의 꼬리라는 물건이 있다면 한두 번 살랑 흔들어 보임으로써 복잡한 기분을 교묘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제법 쓸모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사는 ‘반갑고 정답고 맑은 것’이어야 한다. 인사가 물론 붙임성의 표현이지만 과다하면 예를 잃기도 한다. 슬쩍 말을 건네듯이 “잘 지내죠?”라고 시작하는 인사는 얼마나 따뜻한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시 구절을 인용해 인사를 전해도 좋겠다. 가령 나태주 시인의 시 ‘부탁’은 어떨까.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 사랑아 //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 사랑아.”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