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축산농가 사활이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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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기도 파주에서 발생한 젖소의 수포성 질병이 제1종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口蹄疫)으로 의심받으면서 국내 축산농가와 사료.도축 등 관련 업계에 일대 비상이 걸렸다.

아직 발병 원인을 확인 중이고 구제역인지 여부는 정확한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만일 구제역으로 판명될 경우 국내 축산업은 돼지고기의 수출 중단은 물론 국내 소비 감소에 따른 공급 과잉 등으로 거의 붕괴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 정부는 이미 국내산 돼지고기 등의 수입 통관을 잠정적으로 보류한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해 왔고, 대만도 국내산 소.돼지.염소 등 육류는 물론이고 우유 골분과 가죽 제품 등의 수입까지 금지했다.

구제역이 축산업에 가져오는 파괴력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다. 대만은 1997년 발생한 구제역으로 지금까지도 축산물 수출이 중단돼 모두 41조원의 피해가 나고 관련 산업 종사자 18만명이 실직하는 사태를 겪은 일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당국이 구제역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발병한 가축의 도살.매립과 전염 차단 등 강력한 초동(初動)조치를 단행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더구나 농림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중국.대만 등에도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고, 지난 12일 일본 미야자키(宮崎)현에서도 의사(擬似)구제역이 발생하는 등 주변 상황은 낙관을 불허한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구제역의 확산 방지와 축산물 수급 및 가격안정은 물론 외교적 노력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당장 돼지고기의 통관 보류로 1백여 중소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몰리고, 소비 위축으로 돼지고기 값이 폭락하는 등 가격 파문 조짐마저 일고 있다. 축산농가는 물론이고 이들에게 사료를 공급해온 사료업체, 이들 가축을 도축.가공하는 육가공업체와 관련 수출업체들에 이르기까지 그 타격은 실로 일파만파다.

수출 물량을 정부가 전량 수매하고, 도살 처분한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하며, 육가공업체에 국산 돼지고기 사용을 권장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구제역은 발병하면 도살.매립.소각밖에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국제 규정상 발병하면 예방 접종을 실시하고 접종 중지 후 6개월간 재발되지 않아야 수출을 재개할 수 있다.

하지만 구속력을 갖는 규정이 아니어서 수입국이 인정하지 않으면 수출 재개는 보장이 없다. 축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따라서 당국은 이번 괴질의 원인부터 철저히 규명하고, 방지와 퇴치를 위한 국제적 협력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또 이 괴질이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고 감염된 고기를 먹어도 인체에 해롭지 않다면 이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 육류 불매나 반품 등 유통과정에서 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범정부 차원의 대책과 함께 성숙한 시민정신의 발현을 아울러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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