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김용택씨 새로운 글로 장르 넘기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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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시인이 영화에세이를, 소설가가 문화답사기를 책으로 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52.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 교사)씨가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 (이룸.7천9백원)라는 가벼운 책을, 중진 소설가 윤흥길(58.한서대 교수)씨는 '전주이야기' (신아출판사.8천원)라는 품이 많이 든 책을 썼다.

두 사람은 문단의 비중있는 작가로 수십년간 거의 한 눈을 팔지 않다가 전혀 다른 장르에 발을 디딘 것이다. 이들은 "생각지도 않던 일인데 한번 용기를 내봤다" 고 입을 모은다. 조금씩 시도돼온 장르 가로지르기에 문단의 핵심작가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든 셈이다.

'전주이야기' 를 내놓은 윤씨는 "함부로 적당히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애정을 가지고 쓴 글" 이라며 '자부심' 을 내비쳤다. 그는 쓰던 소설을 중단하고 1년여간 자료 찾기는 물론 발품을 팔아 전주 인근지역까지 샅샅이 둘러보고 나서 책을 내놓았다.

윤씨가 '발품 작업' 에 뛰어든 것은 전주시의 의뢰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전주시는 기존의 어려운 향토사 서적 대신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자 전주에서 자란 소설가인 그에게 글을 부탁했다. 윤씨는 여러차례 고사끝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전주에 빚진 마음이 있어" 글을 쓰기로 했다.

책은 콩나물국밥과 같은 전주의 맛에서부터 대사습놀이라는 전통의 멋에 이르기까지 명품.명인 얘기를 맛깔나는 필체로 엮어냈다.

콩나물국밥이 가능했던 지역의 인문지리적.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국밥맛의 비법인 요리법, 대표적인 전문음식점과 각각의 맛차이까지 비교했다.

김용택씨는 "감히 전공하지도 않은 영화에세이를 책으로 낼 생각은 처음엔 아예 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전주지역에서 발행되는 문예지에 몇차례 감상문수준의 글을 발표했는데, 주변의 격려가 있자 "나는 영화를 공부한 적이 없다. 다만 영화를 좋아해 자주 보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영화전문가들의 글은 너무 어렵다" 라며 책으로 내놓을 결심을 했다.

'촌놈…' 은 시인의 감수성으로 쓴 에세이. 영화얘기와 함께 영화에 얽힌 추억담, 시인의 일상생활이 뒤섞여 있다. 간혹 부정확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라며 그냥 넘어간 대목도 적지않다.

그러나 이광모 감독은 "영화를 평가했다기보다 경험한 얘기다. 그러나 구수한 경험담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고 말했다.

이런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에 대해 평론가 김병익씨는 "과거에는 문학의 중심에서 현실에 대한 글을 쓰는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아예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을 쓴다.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는 일" 이라고 환영했다.

평론가 김윤식 교수(서울대)는 나아가 "오랜 글쓰기와 인생관찰의 훈련을 받은 작가들이 다른 영역에 대한 글도 많이 씀으로써 문학과 다른 예술분야를 함께 풍요롭게 해야한다" 고 적극 권장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기본적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깊이' 라는 부분도 고려해야한다. 영화에 대한 글이라면 보통관객들이 못보는 것을 짚어내는 대목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 말했다.

'외도' 를 한 두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이 만족스러운 눈치. 김용택씨는 "글을 쓰면서 영화에 대한 안목도 넓어졌다" 며 "앞으로 영화 공부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관객의 입장에서 글을 쓰겠다" 고 했다.

윤흥길씨도 "개인적으로 소설 외에는 잘 안쓰려고 하는데, 고향에 대한 글 같은 것은 작가들이 앞으로 해야할 일" 이라며 식지않은 의욕을 보였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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