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 청문회] 결론 못낸 대질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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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옷 로비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법사위 증인신문 마지막 날인 25일은 연정희 (延貞姬).이형자 (李馨子). 정일순 (鄭日順). 배정숙 (裵貞淑) 씨 등 핵심 4인의 대질신문으로 회의장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법사위는 위원장석을 바라보고 증인석 왼쪽부터 청문회에서 증언한 순서대로 裵. 延. 李.鄭씨의 순으로 앉도록 했고, 李씨측의 요청에 따라 여경위 3명을 증인들 사이에 배치해 만일의 불상사에 대비했다.

◇ 결론 못낸 대질신문 = 대질신문이라는 '거짓말 탐지기' 앞에 모인 4인의 여인들은 사건의 진실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네사람은 대질신문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도록 서로에게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裵씨와 李씨는 서로를 '권사' 로 호칭하고 延씨와 鄭씨는 ' - 씨' 로 불렀다.

입원 중이던 한국병원에서 여의사 2명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회의장에 도착한 裵씨는 기침을 자주 하고 침을 종이컵에 뱉기도 했다.

鄭씨는 延씨를 은근히 감싸안는 대신 李.裵씨의 발언에는 즉각 "저건 거짓말" 이라며 가차없는 공세에 나섰다.

특히 李씨가 "鄭사장이 내 동생 영기에게 전화를 걸어와 옷값 대납을 설득했다" 고 하자 鄭씨는 눈을 부라리며 "절대 그런 일이 없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얘기하라" 고 고성으로 윽박지르기도 했다.

李씨가 내키지도 않는 밍크코트 두벌을 라스포사에서 구매한 이유를 묻자 鄭씨는 "본인이 체형이 커서 우리 집에 특별히 부탁했다" 며 '프라이버시 침해성' 발언도 불사. 李씨는 鄭씨의 주장과 어긋나는 논리를 펼칠 때면 힐끔힐끔 옆자리의 鄭씨 눈치를 살폈다.

특히 鄭씨는 "수사에서 장사꾼이라 불이익을 받았다는데 왜 장관부인만 기소됐느냐" 는 질문을 받자 "그건 裵씨가 거짓말을 많이 했기 때문" 이라고 裵씨를 집중공략. 李씨와 裵씨는 옷값 대납 요구의 쟁점을 놓고 팽팽히 맞섰고 延씨와 裵씨는 延씨의 '신동아 해체 발언' 여부를 놓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李씨도 延씨의 '협박성 발언' 에는 가세했으나 延씨는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고 시종 맞섰다. 延씨는 대질신문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휠체어를 타고 있는 裵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뒤 "참으로 안타깝다.

빨리 건강이 회복되기 바란다" 고 말을 건넸고, 裵씨는 짧게 "알았어" 라고 응답한 뒤 서로 얼굴을 돌렸다.

◇ 延 - 李씨 억지 화해했나 = 국민회의 조순형 (趙舜衡) 의원은 "검사의 주선으로 延씨와 화해해서 모든 오해가 다 풀렸다는 얘기가 맞느냐" 고 물었다.

이에 대해 李씨는 "나는 화해할 것도 없고 延씨와 싸운 것도 없다" 고 일단 즉답을 회피.

李씨는 그러나 "옷 로비 사건이 사직동팀에서 끝나자마자 도피 우려도 없는 남편 (崔淳永 신동아그룹 회장) 을 구속수사할 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며 "그 자리에서 화해가 필요했겠느냐" 고 말해 '억지화해' 였음을 시사.

◇ 한나라당 - 이형자 사전 입맞추기 논란 = 한나라당 안상수 (安商守) 의원은 이형자씨에게 해명 기회를 주는 듯한 질문을 해 국민회의 의원들이 일제히 반발. 安의원은 "옷값 대납을 거부하고 난 뒤 崔회장을 구속한다는 검찰의 발표가 있었고, 옷값 때문에 남편이 잘못되는 것 아닌가 두려움을 갖게 됐죠"

"사직동 조사받고 崔회장이 10일 뒤에 구속됐죠" 라고 물어 "예" 라는 답변을 끌어냈다. 安의원은 "崔회장이 구속된 바로 다음날 금융감독위에서 관리인을 보내 회사를 인수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인데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고 유도성 질문.

이에 대해 李씨는 답변서를 읽어가면서 "대한생명이 부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명무실한 회사도 아니고 연간 3천억원의 흑자를 보고 있다" 며 억울함을 하소연하다가 제지를 받았다.

◇ 신동아 그룹의 전방위 로비의혹 = 한나라당 이규택 (李揆澤) 의원과 정형근 (鄭亨根) 의원 등은 최순영회장이 여권 핵심과 친분이 두터운 박시언 부회장을 지난해 5월 영입한 목적과 경위를 추궁하면서 전방위 로비 가능성을 제기했다.

◇ 이은혜씨 출석중 시아버지 상 (喪) =여야는 김정길 (金正吉) 전 행자부장관의 부인 이은혜 (李恩惠) 씨가 이날 증언대에 서기 직전 시아버지 상을 당한 점을 감안, 신문자수를 3인으로 줄이는 '특별 배려' 를 했다.

李씨는 "이런 일로 나오게 돼 정말 부끄럽다. 사실 여부를 떠나 내 자신도 이해할 수 없고 한편으론 원망스럽기도 했다" 고 소감을 피력.

이하경.최훈.유광종.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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