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대해 속의 고깔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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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향지(1942~ ) '대해 속의 고깔모자' 부분

(1,2연 생략)
모자 위의 햇살은 번철 같다
너무 타서 집적거리지도 않는 에그 프라이

모자 속의 시계는 느리다
돌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처럼 느릿느릿 간섭하며 간다
머리카락 끝에서 발톱 끝까지 흡, 착, 흡, 착, 훑으며 간다
어느 쪽으로 가나 수평선에 갇힐 것이므로
반짝이는 수면마다 지나간 것들이나 가득히 펼쳐질 것이므로

트럭 짐칸을 얻어 타고 곧추선 언덕을 넘는 동안이
풍경과 속도의 궁전이다 (후략)



이제 천천히 걷는다는 것도 특별한 의식의 훈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웰빙이란 무슨 말인가? 느리게 산다는 뜻이다. '모자란 섬'. 까맣게 타버린 그 에그 프라이를 누가 집적거릴 것인가. 그 에그 프라이는 혹시 검은 섬 흑산도가 아닐까.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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