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쌀농사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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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어제 이명박 대통령이 인천시 강화읍의 한 쌀국수 생산공장을 찾았다. 이 대통령은 쌀국수를 들면서 “쌀 소비를 늘려야 농민도 산다”고 말했다. “군대 건빵도 쌀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농식품부는 가공용 쌀의 공급가격을 30% 인하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행보에 화답했다.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짚은 느낌이다. 현재 가공용 쌀은 값싼 수입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의 구조적인 쌀 과잉생산을 근본적으로 치유한 다음 쌀 가공식품의 소비를 권장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하자”는 민주당의 처방은 일시적인 진통제에 불과하다. 2002년 쌀 과잉 재고를 대북 지원으로 푼 적이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대북 압박이 고조되면 대북 쌀 지원은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

현재 국내의 쌀 재고량은 67만t이고 연말까지 100만t을 웃돌 전망이다. 쌀 재고를 줄이려면 가장 시급한 것이 조기 관세화다. 우리는 쌀 시장 개방을 유예받는 대가로 올해 30만t의 외국 쌀을 수입한다. 관세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의무수입 물량은 해마다 2만t씩 더 늘어나 2014년 이후에는 40만t씩을 수입해야 한다. 쌀 시장을 빨리 개방해 의무수입 물량부터 동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인 과제는 쌀에 치중한 농업구조를 단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재 농업예산의 20%를 직불금 형식으로 쏟아붓고 있지만 연간 쌀 생산량은 460만~480만t에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은 1996년 104.9㎏에서 지난해에는 75.8㎏으로 급감했다. 당연히 공급초과 현상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농업인구의 고령화로 쌀 생산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짙어지고 있다. 전체 농업소득 중 쌀 소득 비중은 95년 38.1%까지 떨어졌다가 지금은 다시 50% 선으로 돌아왔다.

지금 헌법에 ‘경자유전(耕者有田)’을 못 박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기업들이 대규모 영농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농지법 개정이 한창이다. 이를테면 일본 청주인 ‘사케’ 회사가 일반 벼보다 알갱이가 두 배 큰 사케용 벼를 따로 재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토마토 주스로 유명한 가고메 식품이나 마요네즈로 이름난 큐피는 직접 토마토와 야채를 재배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분리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쌀 중심의 농업구조를 바꾸고 온실 속에 갇혔던 농업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요즘 일본은 농업의 재발견에 재미를 붙였다. 농업이야말로 제조업·서비스업까지 아우르는 ‘제6차 산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취농 희망자가 늘면서 90년 1만5000명에 불과했던 농업 신규 취업자 수는 요즘 10만 명에 육박할 정도가 됐다.